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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 제약인생, 끝이지만 또 시작"

  • 어윤호
  • 2012-02-16 06:44:47
  • 정년퇴임 앞둔 노태호 한국얀센 전무

업무를 보고 있는 노태호 전무
다국적 제약회사 직원들의 근속년수는 그리 길지 않은 편이다.

35년. 노태호(61) 한국얀센 전무가 제약업계서 보낸 시간이다. 서울대 약대 출신으로 영진약품 연구원으로 1975년 제약업계에 발 담근 그는 이중 22년 을 한국얀센과 함께 했다. 18년을 임원으로 있었다.

오는 29일 정년퇴임을 앞둔 노 전무를 만나 제약인생을 되짚어 봤다.

Q. 35년간 임상, 허가, 급여, 약가, 마케팅 등 안 해본 업무가 없다.

-1977년 동화약품, 1988년 코오롱제약 등에 근무하면서 해외 의약품의 라이센스인 작업을 다수 진행했다. 당시 제약사들의 라이센싱 경험이 터무니 없이 부족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절차 하나 하나를 만들어가며 일을 진행했다.

얀센 입사 후에는 메디컬어페어 총괄로 정신분열증치료제 '리스페달' 등의 국내 임상, 허가를 진행했고 포지티브리스트 시스템 도입 후 '인베가', '저니스타', '프레지스타' 등 의약품 등재 업무를 진행했다.

직원들이 뭉쳐 성실히 일한 결과 2011년 기준 한국얀센이 가장 많은 의약품 등재를 이룬 제약사가 됐다.

Q. 언제 가장 뿌듯했나

-리스페달 허가를 받아냈을 때 정말 뿌듯했다. 지금은 가교임상이란 개념이 도입됐지만 1993년 당시 국내 허가를 받으려면 기존치료제와 이중맹검 비교임상을 진행해야만 했다.

게다가 정신과 의약품의 경우 제네릭 제품들이 시장을 점령하고 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국내 정신과 의사들의 임상경력과 제약사 대응 경력이 전무했던 시절이다.

임상계획부터 의사교육에 이르기까지 모든 제반여건을 내 손으로 진행했다. 임상을 완료하고 기존약 대비 우수성을 입증해 1994년 허가가 떨어졌을 때 기분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Q. 힘들었던 기억도 있을텐데

-가장 힘들었던 기억은 리스페달 후속 분열증치료제인 '인베가'의 경제성평가를 받던 상황이다.

심평원에서 경제성평가를 진행하는데, 비교대상약제가 전부 제네릭 의약품이었다. 신약에 대한 국내 평가가 워낙 타이트해 본사와 이해관계가 어긋났다.

끊임없이 본사를 설득시키고 심평원과 논의를 진행해 3회 만에 급여등재를 이뤄냈다. 2007년 식약청 허가를 받은 제품이 2008년 경제성 평가에 돌입해서 2009년 7월에 급여출시가 시작됐다.

Q. 국내사 , 다국적사간 차이라면

-국내사는 관계중심, 다국적사는 근거중심 사업을 전개한다. 물론 장단점이 있고 국내사도 최근 많이 발전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학술적인 근거를 중심으로 한 경영전략이 부족하다고 판단된다.

특히 국내사 고위임원들의 경우 대표품목이 아닌 이상 자사 보유제품에 대한 지식이 풍부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예산규모와 병원장들과 관계 등에 더 신경을 쓴다.

반면 다국적사 사장들은 해당제품 영업사원에 뒤지지 않을 만큼 제품정보를 갖고 있다. 의사를 만나도 학술적 부분에서 접근이 가능하며 질문에 대한 준비가 돼 있다. 근거 데이터가 없다면 이를 활용 사후 임상을 통해 데이터를 늘려 간다.

노태호 전무
Q. 22년간 근무한 한국얀센은 어떤 곳인가?

-모회사인 J&J의 경영 대전제가 자율위임, 지방분권이다. 얀센은 전세계 마케팅에 있어서 무엇보다 그 국가의 문화와 규정을 존중한다.

때문에 특별한 상황이 아닐 경우 그 나라 인력에게 경영을 위임한다. 한국얀센이 국내에 진출한 1983년부터 현재까지 한국얀센에서 외국인 임원이 존재했던 적은 없다.

가장 한국적인 다국적사라 할 수 있다. 일반 사원들과 임원급 인사들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업계 톱 수준이라 자부한다. 국내상황에 맞게 개발한 개량신약 진통제 '울트라셋ER' 발매가 대표적 성과라 할 수 있겠다.

Q. 반값 약가정책, 어떻게 생각하나

-현재 제네릭 약가가 높게 책정돼 있고 허가가 만료된 오리지널 의약품이 계속 약가보전을 받을 필요가 없다는 사실에는 공감한다.

다만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듯 너무 급작스럽게 약가정책이 진행되고 있다. 단계적으로 가는 것이 맞다.

개인적으로 우리나라 제약산업의 연구 경쟁력은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줄기세포치료제, 백혈병치료제 등 획기적인 성과가 나오는 것을 보면 자랑스럽다.

미래에 한국이 신약강국으로 떠 오를 가능성은 분명 높다. 대입시험에서 의약계 전공을 하려면 톱 클래스 성적을 받아야 한다. 비교적 성적이 낮은 공학 관련 국내 산업이 세계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우리라고 못 할 것 없다.

그러기 위해선 정부가 신약에 대한 약가를 확실히 보장해 줘야 한다. 연구비 지원은 큰 도움이 안 된다. 프로젝트 만개 중 하나가 성공해 신약이 된다. 만번의 프로젝트에 들어간 비용을 신약의 가치로 봐야 한다.

Q. 제약업계를 떠나는 소감은

-그동안 세월을 돌이켜 보면 다행히 '만족스럽다'는 기분이 든다. 각각의 적성이 다르지만 약국에만 박혀있는 인생을 선택했다면 많이 답답했을 듯 하다.

가장으로서 맡은 큰 소임을 대부분 마치고 퇴임을 맞게돼 기쁘다. 한국얀센이 복리후생이 좋은 회사기 때문에(웃으며) 두 아들의 대학 교육비도 다 지원 받았고 결혼지원금도 두둑히 챙겼다. 홀가분 하다.

Q. 퇴임 후 계획은 정해졌나

-고민 끝에 제2 인생의 설계를 마쳤다. 사실상 제약사 은퇴는 맞지만 제약업계 은퇴는 아니다.

아직까지 국내 제약업계는 경제성평가, 약가협상, 신약개발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30년 동안 쌓아온 노하우가 필요한 회사가 분명 있을 것이다.

따라서 전반적 P&R업무, 마케팅 자문을 해주는 컨설팅 사무실을 운영해 볼 계획이다. 이미 서초동 쪽에 오피스텔을 하나 얻었고 사무실 이름도 '노태호 파마컨설팅'으로 정했다.

앞으로 진행될 인생 2막에도 기대가 크다. 국내 제약산업 발전에 조금이나마 내 힘을 보탤 수 있게 된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노태호 전무 약력

1952년생 1974년 서울대 약대 졸업 1974년 4월1일~1974년 11월30일: 영진약품근무 연구원(8개월) 1976년 11월6일~1977년 11월30일: 약국경영(1년) 1977년 12월7일~1988년 7월5일: 동화약품(10년 6개월), 개발부, 학술부, 마케팅 차장퇴사 1988년 8월25일~1990 5월12일: 코오롱(약2년) 개발부 근무 부장퇴사 1990년 5월14일 한국얀센 마케팅부장 입사 1991년 Medical affair 총괄부장(임상, 허가, 약가, BD 총괄) 1994년 1월1일 Medical affair 총괄 이사 승진(이사로서 6년) 2000년 1월1일 상무 승진(임상을 제외한 허가, 약가, BD, PV 총괄)&피부과 사업부 영업 임원 겸직(상무로서 7년) 2007년 1월1일 전무 승진(전무로서 5년) 2012년 2월28일 정년(총 임원으로서 재직 기간 1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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