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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감정노동자가 된 약사…그러하더라도

  • 조광연
  • 2012-08-29 12:26:50

바야흐로 전문인이 고통받는 시대다. 전문인 중에서도 특히 의약품 전문가라는 약사의 고통은 곁에서 지켜보기에도 딱한 실정이다. 한 때 낮은 문턱이 자랑이었던 약국은 이제 그 낮은 문턱 때문에 팜파라치들의 전용 사업장이 된 형국이다. 어느 고객의 가방에 몰래카메라가 숨겨 있는지 모를 지경이다. 팜파라치가 아니더라도 심심찮게 방송국 카메라들도 숨어들어 시시콜콜 따지고 든다. 내부적으로는 다른 약국을 들먹이며 가격이 비싸네, 싸네 시비하는 고객들과 신경전을 벌여야 한다. 먹다 남은 조제약을 환불해 달라는 고객과도 에너지를 소모해야 한다. 약사들은 어느 새 '감정노동자' 반열에 끼어 들었다. 본연의 업무인 조제와 복약지도 만으로도 매일 매일이 투쟁인데 마치 연기하듯 친절함과 상냥함을 유지하기 위해 매순간 감정을 통제하자니 죽을 맛일 것이다.

어떤 면에서 이같은 일상의 갈등들은 '빅뱅의 위기를 맞은 약국'이라는 중압감에 견주면 아주 가벼운 것일지도 모른다. 약국 관련 비즈니스를 크게 하는 한 관계자는 전망한다. "약국 생태계가 점진적으로 변한다고 보면 안일한 오산이다. 향후 5년 안에 급속도로, 상전벽해처럼 변할 수 있다. 태풍의 눈은 바로 '약없는 드럭스토어들'의 약진과 안전상비약의 편의점 판매다. 무엇보다 나홀로 약국, 동네약국들이 변신의 시점을 맞고 있는데 걱정스러운 것은 뚜렷하게 권장해 줄 만한 대안이 없다는 점이다. 아니 대안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약사들의 인식 전환을 전제로 지난하게 노력해야 하는 것이라서 심리적으로 불안정하고 다급해진 약사들이 귀담아 듣기 어려울 것이다"라고.

이 관계자가 제시하는 대안은 전국 모든 약국이 '약사의 가치로 소통하는 것'이다. 약사의 가치란 무엇일까? 참 막연한 말이다. 그러나 단순화시켜보면 어떨까. 약사는 의약품에 관한 지식과 건강에 대해 일반인보다 월등히 많이 알고 있다. 많은 소비자들도 당연히 그렇게 생각하고 받아들이고 있다. 소비자들의 이같은 믿음에 약사들이 구체적인 그러나 쉬운 일상의 말들로 답해주는 것 그것이 바로 약사가치 기반의 소통 행위일 것이다. 필자의 친구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얼마전 어지럼 증세로 이비인후과 진료를 받고 처방전에 적힌 약을 스마트폰으로 검색해 보니 항우울제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약을 건네는 약사에게 너무 궁금해 "제가 왜 항우울제를 먹죠?"라고 물었더니 "항우울제는 없는데요"라는 답변이 돌아와 실망했다고 친구는 말했다.

모르긴 몰라도 그 약사는 환자가 항우울제 정보를 안다는 것이 복약순응도에 오히려 나쁜 영향을 미친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이럴 경우라도 '그것까지 알필요는 없다'는 표정보다 한마디만 더 설명해주면 고객은 그 약국을 결코 떠날 수 없을 것이다. 그 고객이 알고 있는 정보는 내가 먹는 약 중에 항우울제가 있다는 것 뿐이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며 전문가인 약사에게 자신의 건강에 대해 설명받고, 이해받고, 공감받고 싶었을 따름이었다. 친구의 말이 그렇다. 이 에피소드처럼 환자들은 약국에 가면 평소 궁금했던 것을 털어놓고 싶어하는 것이 사실이다. 인터넷 정보가 넘친다해도 직접 전문인의 입으로 들어야 더 믿음이 가는 심리 때문이다. 물론 수많은 내방객들을 만나다보면, 약사들은 하루에도 수 차례 평정심이 깨질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차라리 무표정으로 자신을 감싸는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되돌려 생각해보면, 약사의 따뜻한 눈 빛과 온화한 목소리야 말로 '약없는 드럭스토어'가 갖지 못한 '비밀병기'가 아닌가. 전문인이 고통받는 시대를 견디려면 '약사의 가치'를 더 높이는 일에 모든 약사들이 나서야 한다. 일상을 괴롭히는 수 많은 시비에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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