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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PIA 연구중심 협회 언급 속내 들여다보다가…

  • 최은택
  • 2013-06-17 06:34:51
  • 요약
  • '이어도' 찾아 떠난 뱃길 '파랑도'서 닻 내려

['다국적 제약사 50년 명과 암' 기획후기]

"오늘 새벽 닭이 울기전에 나를 세번 부정하리라." 성경은 '이렇게 말했다'(가로되)고 표현하는 걸 즐긴다. 불경은 '이렇게 들었다'(여시아문)고 한다. 뉴스보도에서 직접인용은 '이렇게 말했다'의 영역이다.

다국적의약산업협회(KRPIA) 회장인 김진호 한국GSK 사장은 지난 4월 전문지 기자들을 만나 흥미로운 말을 꺼냈다. 데일리팜 보도내용을 그대로 옮겨보자.

"우선 KRPIA가 다국적 제약사만의 협회라는 이미지가 나는 싫다. R&D를 기반으로 하는 제약사들의 모임이 되는 게 맞다. 국내사가 가입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협회 명칭을 바꿀 의사도 있다."

김진호(한국GSK 사장) KRPIA 회장
KRPIA 회장이 인터뷰에 나선 것은 보기 드문 일이다. 그리고 그는 (제약단체 유형으로써) '다국적의약산업협회'를 '부정 혹인 부인'한다. 우리(기획전담팀)는 궁금했다. 속내가 무엇일까? 어윤호 기자와 나는 좌충우돌 스무고개를 넘었다. 기획취재를 결정했다.

어디서부터 시작할까? 사전조사 끝에 50년의 '명과 암'을 들여다보기로 했다. 당시 타이틀은 '너희가 외자제약사인 까닭은' 쯤 됐다. '명'보다는 '암'에 무게를 둔 취재계획이었다. 국내법인을 두고 활동하는 외자계 제약사 현황을 정리하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반면 역사적 접근은 쉽지 않았다. KRPIA에 물었지만 '근거'를 좋아하는 그들조차 의외로 이런 기록은 정리하지 않고 있었다. 대신 제약협회가 발간한 '제약50년사'가 '좋은' 참고자료가 됐다.

취재원 확보도 만만치 않았다. 우선 외자계 제약사 출신 임직원을 수소문했고, 현 근무자를 재확인하는 순으로 접근했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전직 임직원에 비해 현직 근무자들은 취재가 더 어려웠다.

"신약 접근성 제고 우선 조명했어야"…지적 공감

총5편의 시리즈 기획물 중 2편이 보도되자 KRPIA 측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일부 비유적 표현이 불편했다고 했다. 외자계 제약사의 한국진출과 시장경쟁을 ' 십자군'으로, 임상시험 투자확대를 일본이 착취율을 높이기 위해 토지 경지정리를 단행하고 '신작로'를 개설한 것 등의 따위로 비유한 게 못마땅했던 모양이다. 다소 과도했다는 점 인정한다.

한국에 대한 기여도에서는 "신약을 개발해서 국내시장에 소개한 것이 우선돼야 한다. 회원사가 국내에 진출하지 않았다면 환자들이 신약을 접해 볼 기회가 지금보다 적었을 것"는 의견을 줬다. 공감할만한 지적이었다.

우리도 기획단계에서 신약 접근성 부분을 최우선 가치로 뒀었다. 그러나 제약산업과 관계에 집중하기로 하고, 그 부분은 기사에 넣지 않았다. 의도적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기여도를 반감시키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취재과정에서 외자계 제약사가 국내 의약품 시장에서 지배력을 확고히 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한 게 의약분업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는 외자계 제약사 제품을 사오거나 공동판매한 국내 상위제약사들의 역할도 적지 않았다.

우리는 그들을 '부역자'로 지목하고 싶었다. 하지만 기획의도와 달리 '과격한' 표현이 불필요한 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돼 완곡한 표현으로 바꿨다. '일그러진(이율배반적인) 민족주의' 정도로.

독점이윤을 위한 '횡포 아닌 횡포'도 지적했다. 특히 본사와 한국법인과의 '갑을적' 관계에 집중했다. KRPIA 측은 "단편적인 상황을 논하거나 너무 소수의 사례를 확대한 감도 있다"고 지적했지만, 외자계 제약사 한국법인의 실체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좋은 사례라고 판단했다.

일부 단편적·소수 사례 일반화 하지 말라지만…

이 기획에서 우리는 한국법인이 본사와 한국 정부, 또는 국내 제약산업 사이에서 접점이 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적어도 '외자'라는 표식을 떼고 싶다면 개별기업과 협회 차원에서 이런 노력들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문제는 정작 기획의 발단이 됐던 김 회장의 속내는 분석적으로 파헤치지 못했다. 외자계 제약사들이 국내 제약사들과 혁신형 제약기업단체를 결성하는 데 주도적으로 참여하려는 의도가 다분해 보인다거나 '더 두껍고 단단한 새 탈로 바꿔 쓰겠다는 의미'라는 식의 짤막한 해설로 갈음했다.

'이어도'를 찾아 떠났다가 '파랑도'에서 닻을 내린 모양새다. 변명하자면 이런 것이다. 이 기획은 외자계 제약사 50년의 명과 암을 정리하는 수준이면 됐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다음 시리즈에서 김 회장의 속내를 보다 분석적으로 파헤치고, 외자계 제약사의 역할 모델도 궁리해 볼 수 있다고 봤다. '상', '하' 두편 중 상편만 나온 미완의 소설인 셈이다.

당시 보도했던 기획전문 이미지. 이 기획은 외자계 제약사 50년의 명과 암을 정리하는 수준이면 됐다.
못다한 이야기를 풀어보면 이렇다. 취재과정에서 만난 국내 제약계 한 전문가는 "한국은 다른 나라들에 비해 비교적 다국적 제약사들의 '말빨'이 잘 통하지 않는 국가다. 적어도 약가제도에서는 그렇다"고 주장했다.

김 회장의 '부정'은 이런 위기의식에서 비롯됐다는 해석이다. 정부는 국내 제약산업을 연구개발 중심으로 재편해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는 쪽으로 끌고 가고 싶어한다. 이를 위해 '혁신형 제약기업' 패밀리를 만들었고, 정부 차원의 모든 정책과 지원을 이 쪽에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이 그룹에 외자계 제약사의 공간은 많지 않다. 전체 의약품 시장의 60% 이상을 장악했다고 추정될 정도로 외자계 제약사가 개발한 의약품의 지배력은 막강한 데 비해 정책적 의제에 대한 미약한 영향력엔 막막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혁신형 제약기업들과 연구개발중심 제약사 모임을 결성하면 헤게모니의 주도권을 쥘 수 있는 여지가 생길 수 있다. 가령 주한미상공회의소나 미무역대표부, 심지어 대사관까지 동원된다는 통상압력의 도움 없이도 '손톱 밑 가시'를 제거할 수 있다는 전략적 판단이 작용한 것 아니겠느냐는 분석이다.

'상편'만 나온 미완의 소설…기회가 주어진다면

우리는 이런 분석의 타당성 여부를 떠나 김 회장의 발언이나 외자계 제약사의 행보에 대한 국내 제약기업과 시민사회단체 등의 불신이 그 만큼 크다는 점을 외자계 제약사나 KRPIA가 인식하기를 바랐다. 이런 불신을 상쇄하고 발전적인 협력관계를 모색하기 위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최근 사용량 약가연동제도 개편논의 과정에서 제기된 의혹을 보면, 이런 기대는 아직 요원해 보인다.

이 개편안에 대해서는 KRPIA 뿐 아니라 국내 3개 제약단체까지 공동으로 문제점을 제기했다. 그러나 이 개편안이 보류 또는 사실상 좌초된 데는 정·관계 요로를 통한 통상압력의 힘이 작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이 때문에 정부 일각에서도 외자계 제약사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다.

우리는 결론적으로 김 회장의 KRPIA '부정 혹은 부인'은 국내 제약산업 역학관계에서의 한계를 극복하고 주도권을 보다 공공히 하기 위한 변증법적 '자기부정'의 일환으로 해석했다.

KRPIA는 한미약품과 MSD 협력사례를 제시하면서 "제약강국을 이루고자 한다면 글로벌과의 전략적 파트너링이 중요하다. 다국적 제약사도 적극 협력하고 있다"고 항변했다. 또한 "연구중심제약협회는 이런 협력을 활성화할 수 있는 중요한 공간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여기에 대해서는 기획취재를 함께 진행했던 어 기자의 평가로 갈음한다.

"사실 (기획취재 이전에는) 다국적 제약사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더 많았던 게 사실이다. 취재 과정에서 다국적 제약사들이 국내 제약산업 발전에 무시할 수 없는 공을 세웠다는 점을 인정하게 됐다."

어 기자는 또 이렇게 말을 이어갔다. "국내 공장설립으로 드라마틱한 시너지 효과를 보여준 업체도 있었다. 가령 울트라셋ER 등의 개량기술은 한국얀센의 독자적 기술이었다. 이 회사는 정신과 의사들에게 임상개념을 확립해 준 공로도 크다."

결과적으로 "다국적 제약사가 (국내 제약산업 또는 국내 제약기업, 정부 등과) 상생을 위한 노력을 보여주지 못한 점은 아쉽지만 이들을 한 데 묶어 판단하지 말아달라는 주장은 귀 담아 들을만 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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