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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환자? 내 삶, 드라마틱하지 않다"

  • 최은택·김정주
  • 2014-04-15 06:14:59
  • 데일리팜이 만난 사람 복지부 주정미 국장

명민하고 강인한, 그러면서 열정적인 사람

"'여자한테 맡겨도 문제없이 잘 해내더라, 오히려 여자가 더 잘 하더라'. 그리고 '같은 일이라도 주정미가 하면 다르더라'는 평가를 받고 싶어 부단히도 노력했어요."

그래서였을까. 주 국장은 복지부 부대변인, 보육과장, 청와대 행정관, 혁신인사 기획팀장, 보험정책과장 등을 거치면서 시쳇말로 '잘 나갔다.' 그리고 공직에 오른 지 17년만인 2009년 마침내 고위직공무원단인 아동청소년 복지정책관 자리에 올랐다.

이런 주 국장을 사람들은 '명민하고 강인한 의지의 사람'(서울대 권순만 보건대학원장), '어떤 보직을 맡겨도 업무에 대한 열정이 남다른 직원'(변재진 전 복지부장관)이었다고 기억했다. 복지부 한 국장은 '악바리'라고 했다. 보험정책과장에 발령돼 처음 건강보험 업무를 접하게 됐을 때는 서울대 김창엽 교수(당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장)를 찾아가 '과외'를 청했다. 그렇게 3개월가량 매주 김 전 원장에게 건강보험 정책을 수학하고 토론했다.

주 국장은 "제가 알아야 일도 시킬 수 있잖아요"라고 웃었다. 그는 이런 사람이다.

어느 평범한 날 선고된 암, 눈물도 나지 않았다

그러나 운명은 아무런 예고 없이 '억척배기' 그의 삶을 뒤흔들었다. 아동청소년복지정책관으로 승진한 뒤 5개월 쯤 지났을 무렵이었다. 그는 유방암 3기 진단을 받았다. 흔히 '말기'라고 하는 4기로 넘어가기 전의 심각한 단계였다.

암 판정받던 날, 화장실로 달려갔다. 우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내게 왜 이런 일이 생긴걸까?' 전혀 실감 나지 않았어요. '내가 큰 잘못을 하고 살았나' 하는 생각도 들었죠." 세상에 대한 원망 아닌 원망이 샘솟았다.

지난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동네 목욕탕에서 목욕관리사가 오른 쪽 가슴에서 멍울 같은 게 만져진다는 말을 처음 했을 때가 그해 어느 봄날이었다.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두 달 뒤 목욕관리사가 바뀌었는데 같은 말을 하면서 병원에 가보라고 권했다. 통증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일도 많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7월이 돼 버렸다. '바보같다.'

'내일 아침 다시 눈 뜰 수 있을까' 고통의 날들

주 국장은 서울대병원으로 검사기록을 옮겨 유방절제 수술을 받았다. 그리고 고통의 세월, 바로 항암치료와 방사선 치료가 이어졌다. 그는 항암제 부작용이 다른 환자보다 심한 편이었다. 주사를 맞으면 열흘 정도 극심한 고통에 시달렸다. 처음 '6사이클' 동안 항암제를 투약받았다. 근육통, 관절통, 탈모, 오심, 복통 등 그야말로 교과서에서 언급된 부작용들이 모두 나타났다.

"밤마다 '과연 내일 아침 다시 눈을 뜰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잠들곤 했죠."

어느 날은 백혈구 수치가 너무 떨어져 응급실에 실려가기도 했다. 결국 항암주사를 맞을 때마다 백혈구 증강제를 함께 투약받으며 버틸 수밖에 없었다. 주 국장은 수술 전 책을 통해 유방암 치료성적이 다른 암보다 좋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치료만 잘 받으면 낫는구나'. 그나마 위안이었다. 수술과 항암치료 과정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병원치료가 빨리 끝나기만 손꼽아 기다렸다. 그러나 이런 생각이 오히려 화근이었다.

병원 밖을 나섰을 때 환자들은 더 막막하다

막상 병원치료가 끝나자 어떻게 생활해야 하는 지 막막했다. 의료진은 이렇게 말했다. "즐겁게 생활하라. 직장에 복귀해도 된다." 영양사는 균형 잡힌 식사를 하면 된다고 했다. 인터넷을 다 뒤져봐도 암 환자를 위한 구체적인 생활지침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일단 병원 치료가 끝났으니 당연히 병이 나은 것이라고 여겼다. 조금 더 운동하고 적당히 음식을 조심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음 해 봄 암이 척추로 전이됐다는 진단결과가 그를 또 한 번 아프게 찔렀다.

유방암 재발률은 20~30%로 다른 암에 비해 높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러나 크게 마음쓰지 않았다. 그저 통계 수치일 뿐이라고 여겼다. "느닷없이 암 환자가 돼 고통스런 항암치료를 받은 것만으로도 나는 이미 불행할 만큼 불행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이제는 더 힘든 일이 없겠지', '재발하지 않는 70% 그룹에 속하겠지'라고 철통같이 믿고 싶었죠."

척추로 전이된 암, 고통의 날은 다시 이어지고

항암치료를 다시 시작했다. 처음보다 부작용이 덜하기는 했는데 손발 부종이 너무 심했다. 급기야 손톱이 빠지고 피가 배어 나왔다. 그로부터 4개월 간 끔직한 고통의 날이 이어졌다.

암은 일반적으로 치료 후 5년 이내에 재발이나 전이가 많기 때문에 5년 생존율을 산출한다거나 암 병기가 높을수록 전이 또는 재발 위험이 크다는 사실, 유방암은 전이나 재발이 빈발하기 때문에 10년 생존율을 보고 병원 치료가 끝나도 암이 모두 없어지는 게 아니라는 것, 본인 상태 등에 맞는 사후관리가 필요하다는 사실들을 전이되고 나서야 알게 됐다.

의사말만 듣는다고 완치되는 게 아니었구나

'의사말만 듣는다고 완치되는 게 아니구나.' 요양병원에 들어갔다. 세상과 인연을 끊고 살고 싶었다. 그만큼 낙담이 컸고 자신의 병에 대해 더 알고 싶은 욕구도 강했다.

요양병원에서 만난 환자들은 제각각 보조요법으로 여러 음식이나 민간요법 등을 활용하고 있었다. 주 국장이 깨달은 건 다른 사람에게 맞는 게 자신에게도 꼭 그렇게 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꼼꼼히 자료를 찾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었다. 그리고 자신에게 맞는 '소스'들을 하나 둘 정리해 나갔다.

주 국장은 이런 이야기들을 책으로 엮었다. '암이래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요?'. 출판사는 이런 부제나 설명을 달아 놨다. '암 판정을 받으면 당장 해야 할 것들.', '암 환자가 반드시 알아야 할 생활 지침서.' 서점에 가면 흔히 접할 수 있는 그런 표현들이다. 그러나 다른 책들에는 없는 것들이 주 국장의 책에는 담겨있다.

그의 간절함과 사람들에 대한 뼈 속 깊은 연민이다.

'아는 만큼 생존한다' 뼈 속 깊은 연민의 기록

주 국장은 "암을 아는 만큼 생존한다"고 썼다. 처음 암 판정을 받았을 때 환자들이 선택해야 할 것들부터 적어나갔다. 자신에게 맞는 병원,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결정하는 '명의', 항암치료에 대한 선택지, 임상시험의 유의미성, 가족의 역할까지 암 환자와 주변사람에게 필요한 매뉴얼을 경험의 언어로 풀어냈다. 또 치료 이후 생활수칙, 통증에 대처하는 법, 각종 민간요법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지 않고 꼼꼼히 담았다

안젤리나 졸리의 유전자 검사 사례를 언급하면서 암 가족력이 있는 어린 자녀들의 건강관리 방법도 소개했는데, 의도하지 않은 상태에서 가족력의 굴레를 쓰게 된 두 딸에 대한 미안함이 물씬 풍긴다.

여기다 환자들이 일상생활에서 겪게 되는 불안감, 우울, 죽음에 대한 부분도 놓치지 않았다. 주 국장은 '암 진단부터 사회복귀 후 일상생활까지' 자신의 경험과 고민을 세상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 했다. 책을 쓰라고 권유한 건 두 어머니(친정/시댁)와 함께 헌신한 남편이었다.

치료는 진료의사를 신뢰하고 존중하는 것부터

"아직 완치 판정을 받은 상태는 아닙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사후관리가 지금도 진행 중이죠. 그런데 언제부턴가 투병과정을 글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그동안 접한 경험과 정보를 힘들게 투병생활 하는 다른 환자들과 나누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주 국장은 이런 말도 했다. 투병하면서 병은 한 가지인데 몸에 좋다는 건 천 가지, 만 가지 이상이니 선택 자체가 아노미였다. 목숨을 걸고하는 투병생활인만큼 선험자로부터 효과적인 치료법을 듣고 싶기도 했다. 그러나 스스로도 갖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시간과 돈을 많이 들여야 했다. 무엇보다 '처음부터 제대로 공부하고 실천했더라면 전이를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후회막급이기도 했다.

"환자 입장에서 보니까 진료의사의 권위를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설픈 지식으로 의사 위에 서려고하는 경우를 종종 봤는데 오히려 치료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너무 의존만하는 것도 문제지만 신뢰와 존중이 우선돼야 합니다."

후회의 기록 남겼지만 얼마나 살만한 세상인가

주 국장은 OECD 대한민국 정책센터 파견근무로 현업에 복귀했다. 아직 치료 중인 환자임에도 병색 없이 밝은 그의 얼굴에서는 특유의 낙천성과 열정이 묻어났다. 어쩌면 예비환자이거나 예비환자의 가족인 우리는 '지난 4년 여 간의 생존기록이자 후회의 기록'이라는 그의 비망록에 감사해야 할 지 모른다.

주 국장은 이렇게 썼다.

"따스한 아침햇살, 출근길의 초록빛 가로수들, 푸른 하늘, 석양, 가을 아침의 싸늘한 공기, 가을 단풍숲길. 나열할 수 없는 순간순간의 아름다움이 도처에 있다. 그 아름다움에 감동하고 감사하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하여 이 세상은 살만한 곳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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