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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어도 6개월 전엔 인쇄 준비 마쳐야 가능하다"

  • 최은택·김정주
  • 2014-05-09 06:14:59
  • [일련번호 오해와 진실<3>] 정부 연구보고서도 제안

"3년 7개월 시간을 줬다. 최대유통일자와 로트번호를 준비하면서 #일련번호 표시까지 가능하도록 설비를 도입한 업체들도 있다."

일련번호 표시 의무화 시행에 반발하는 제약업계를 향해 정부 관계자들이 이구동성으로 던지는 말이다. 불신도 있다. "경험상 산업계는 제도시행에 임박했을 때 움직인다."

그러면서 "고시대로 일단 강행하다보면 대부분 준비를 마칠 수 있을 것이다. 불가능했던 점을 소명하면 그때 가서 예외를 고려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결론내린다. 사실 정부 측의 이런 지적은 근거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경험상 산업계는 제도시행 임박해야 움직인다"

그렇다면 복지부는 할 바를 다했을까? 제약계 한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일련번호가 이슈로 떠오른 건 지난해 초쯤이다. 한 다국적 제약사가 본사에 일련번호가 포함된 바코드 표시를 요청했더니 본사 임원이 깜짝 놀라서 한국에 날아왔다."

한국정부가 요구하는 지침이 뭔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최대유통일자와 로트번호를 표기하기 위해 GS1-128 바코드가 이미 도입됐기 때문에 어려울 게 없다고 생각했던 한국지사 직원도 덩달아 놀랐다.

이 이야기는 다국적의약산업협회에서 공론화됐고 그 때부터 대책모임이 가동됐다. 제약협회는 이 보다 더 늦게 대응에 나섰다.

복지부가 새정치민주연합 #김성주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복지부는 그로부터 한참뒤인 지난해 9월24일이 돼서야 '의약품 일련번호 제도시행 관련 업계 간담회'를 소집한다.

이어 같은 해 11월 4일 관련 부처 등과 운영방안을 협의한 뒤, 같은 달 19일 미래창조과학부에 '일련번호 관련 업계 현황파악 및 점검요청' 공문을 보낸다.

그리고 업계 준비사항과 일련번호 가이드라인 등을 마련하기 위한 연구용역 협약을 지난해 12월30일 체결하고 최근에야 이 연구를 마쳤다. 그러면서 6월 중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면 이에 맞춰 하반기 중 관련 설비를 충분히 구축할 수 있다고 정부 관계자는 거듭 밝히고 있다.

한국, 가이드라인 제시 후 6개월이면 '준비 끝!' 중국 5년·인도 3년·터키 4년, '단계적 시행'

KRPIA 측은 혀를 내둘렀다. 이 협회는 정부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미국, 유럽을 포함한 대다수 국가는 아직 일련번호 의무표시 제도를 시행하지 않고 있고, 제도를 시행 중인 국가도 단계적으로 적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가령 중국은 5년 계획으로 대상품목과 일련번호 적용수준을 정했고, 인도와 터키는 가이드라인 제정 후 각각 3년과 4년 동안 2단계로 진행했다는 설명이다.

그런데 복지부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가이드라인 제정 후 6개월 이내에 설비를 구축해 전문의약품을 대상으로 전면 의무화한다고하니 가당치 않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복지부 연구보고서를 다시 꺼내보자. 연구진은 보고서 정책제언을 통해 "가급적 빠른 시간 안에 제도시행 여부를 결정하고 이 사실을 적극적으로 홍보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각 회사마다 사정이 다르다보니 작은 부분까지 상황에 맞춰 조정하는 데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유였다. 현장의 이야기로는 늦어도 제도시행 6개월 전에는 인쇄시설 등의 도입을 완료해야 정상적인 생산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제약계는 다른 나라들이 수년동안 여러단계를 거쳐 적용하는 사업을 단 6개월 내 진행하는 우리나라 실정에 혀를 내두르고 있다. 사진은 심사평가원 바코드 설명회에 참석한 산업계 관계자들.
더 중요한 제언은 다음부터다.

연구진은 홍보대상에 제약사는 물론 이를 이용하는 도매업체나 병원, 약국도 포함돼야 한다고 밝혔다. 약국과 병원은 GS1-128 바코드를 꼭 써야하는 의무가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홍보하지 않는다면 자칫 기대효과가 반쪽에 머무를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복지부 보고서 "병원·약국 참여안하면 반쪽짜리"

그러나 복지부는 이 제언을 따르지 않았다. 국회에 제출한 진행 경과를 보면, 2015년 1월1일부터 일부 의약품을 제외한 모든 전문의약품에 일련번호 표시를 의무화한다는 고시를 2011년 5월31일 시행한 이후 팔짱만 끼고 있었다.

더욱이 제약사에게만 의무를 부여했을 뿐 병원이나 약국은 고려대상에 넣지도 않고, 일련번호 도입이 의약품 유통투명화에 기여할 것이라고만 했다.

일련번호 활용을 위해 필수적인 통보의무도 이번 연구용역에서 제안돼 추후 고시를 개정해 반영할 예정이다. 복지부는 심지어 고시 재검토 기한(2014년 3월31일)을 넘겨 지난달 10일에야 기한을 연장하는 고시 개정안을 행정예고하기도 했다.

전직 공무원인 한 제약계 관계자는 "바코드 관리방안 등 실행방안에 대한 법적 근거가 먼저 마련돼야 한다. 복지부장관 고시로 시행시기만 정해놓고 밀어붙이는 건 과도한 재량권 남용"이라고 주장했다.

제약계 다른 관계자는 "우리도 일련번호 도입 필요성에는 충분히 공감한다. 그렇다고 준비가 덜된 상태에서 제도를 시행하다가 추후 문제점이 발생하면 그때그때 대처한다는 발상은 '땜질식 행정'의 전형"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종합하면 결론은 이렇다. 제약업계는 3년 7개월이나 유예기간을 줬는 데 이제와서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아우성이다. 무엇보다 최대유통일자 표기를 위해 처음 GS1-128 바코드를 도입하면서 일련번호 의무화를 염두하고 설비를 구축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렇게 하지 않고 '단계적'으로 접근했다. 전문약에 최대유통일자와 로트번호 표시 의무화(2013년 1월1일)를 끝마치고 그 뒤부터 다시 일련번호 문제를 고민하기 시작한 것이다.

국내 제약계 한 관계자는 "사실 단순하게만 생각했지 일련번호 표시를 위해 필요한 게 어떤 건 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무지 등에 따른 부작위'가 인정되는 셈이다.

제약에 '부작위' 책임 묻는다면 적반하장인 이유 법령준비 부실하고 고시 '재검토기한'조차 넘겨

정부는 어떨까. 복지부는 2008년 1월 개정 고시에서 최대유통일자와 로트번호 표시 의무화를 기반으로 한 GS1-128 바코드 도입을 의무화하고 시행시기는 유예했다. 이어 2011년 5월에는 의무표시 대상에 일련번호를 추가했다.

그러면서 일련번호 표시를 위해 제약계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지 설명하거나 홍보하지 않았다.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구현하기 위한 가이드라인조차 제시하지 않고 팔짱만 낀 채 세월을 보냈다.

표시의무만 강조했지 일련번호 통보의무 등을 포함한 관리 및 활용방안은 고민조차 하지 않았다. 이러다보니 병원이나 약국은 논외가 됐다. 정책연구도 종이 뭉치 쯤으로 취급했지 실제 활용하지 않았다.

고시 의무규정 이외에는 법률적 근거도 체계적으로 만들지 않았다. 재검토기한조차 지키지 않고 사실상 이 고시조차 방치했다.

'부작위'의 진정한 책임은 누구일까? 이런 상황에서 '3년 7개월이나 시간을 줬다'고 한다면 적반하장이라는 비판도 나올 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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