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스트 이후 의·약사 존경받는 직업으로 자리매김
- 데일리팜
- 2014-08-25 06: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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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재9] 나병·흑사병과 중세시대의 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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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크에 있던 호스피스는 색슨왕 애셀스턴이 지원을 해주었는데 그곳을 운영하던 교회에 의해 제공되는 긴급도움이 많은 도움이 되어 배우 붐볐다. 그는 성베드로병원을 지을 때도 많은 도움을 주었다. 다른 경우로 플리스톤은 '매우 황량한 지역에 위치해 있었는데 이는 순례자들을 늑대의 공격으로부터 막기 위한 피난처 용도로 설립된 것'이었다.
1148년경 런던 스미스필드의 성바르톨로뮤병원은 '눈에서 소리 나는' 사람들이나 두통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도움을 받으려고 몰려들었다. 거기에는 간질환자나 부종이나 열로 고통 받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또 다른 병으로는 괴저에 의해 피부가 위축되고 검게 변하는 '성 안토니의 화염'이라 알려진 맥각 중독도 희귀한 것이 아니었다. 맥각 중독은 호밀이나 다른 곡식에 침범한 클라비셉스 푸르푸레아 곰팡이에 의해 만들어진 알카로이드를 장기간 섭취한 결과 맥각 독소에 노출되어 나타나는 증상이다.
초기 진료소
1179년에 캔터베리의 성토마스병원은 영국 내 중요 순례지가 되었다. 다른 병원이나 호스피스도 도버와 메이드스톤, 스트루드 등 채널포트와 순례자의 길을 따라 그리고 내륙으로 더 들어가 솔즈베리에까지 세워졌다. 그 당시의 병원은 숙소와 진료소를 겸했다. 예로 1194년 옥스퍼드 변두리에 '헤르베르지아'를 세워 거기에서 허약자나 이방인들에게 치료를 해주거나 생활필수품들을 주었다.
14세기는 아마도 순례가 가장 활발해진 시기였기도 하지만 순례는 다른 많은 이유들과 함께 방랑생활을 조장하는 한 원인이기도 했다. 1350년에 무위도식과 구걸의 금지시키기 위한 '노동의무법'이 만들어졌다. 이런 법적인 강제로 사람들이 장기 체류를 못하게 하고 이동 중인 특별한 구걸자에게만 하룻밤을 재워줄 뿐이었다. 그 당시 그래도 어린이와 여성들을 돕는 구제형태는 널리 행해졌다. 솔즈베리의 성삼위일체라는 단체는 '임신한 여성은 분만과 회복 그리고 교화 때까지 돌본다'고 언급하고 있다.
병원을 운영하는 관리자나 병원의 후원자들에 의해 행해진 1414년의 추가적인 조치들은 신체에 문제가 없는 일반인들의 병원 이용을 더욱 감소시켰다. 초기의 후원자들은 대부분 고결연(然)한 사람들로 그들의 대부분의 관심사는 사후 세계에서의 그들의 지위 때문에 후원을 하였지만 그들의 후계자들 중에서는 종종 그 병원을 그들과 수행원들을 위한 숙박시설로 사용하기도 했다.
몇몇 경우에서는 후원자들이 여행과 숙박의 특권을 공헌에 대한 - 특히 왕실을 위한 공헌이라면 더 특별히 - '보상'으로도 주어졌다. 그리고 관리자나 관리들의 직권남용은 더 큰 문제였다. 스탬퍼드의 세인트존과 성토마스병원의 관리자는 이방인과 환자들이 수용되어 있는 방들을 잠궈 버리거나 빈민구호품을 횡령하기도 했다. 다른 경우에도 이 건물들은 보수가 제대로 되지 않아 거의 폐허가 되어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나병과 나병원
하지만 병을 치료해주는 다른 형태의 기관도 있었다. 그런 곳에는 나병원과 나병진료소가 있었다. 비록 나병은 종종 잘못 진단되기도 했지만 어쨌거나 비교적 흔한 질병이었다. 이 시기에 두 개의 나병원이 로체스터와 하블다운에 세워졌다. 나병은 아마도 사라센의 스페인 침입 결과 나타났고 그것이 유럽북부로 퍼진 것으로 보인다. 나병은 마니코박테리움 레프라에에 감염되어 나타나는데 감염이 퍼지면서 면역결핍환자에게 코가 뭉개지거나 피부가 손상 받게 된다. 나병은 빠르게 증가하였고 나병원과 진료소도 빠르게 증가하였다.
흑사병과 격리병원
14~15세기에 영국을 초토화시킨 최악의 질병이 지나갔다. 이 질병은 흑사병이란 이름으로 알려졌는데 약간의 논쟁은 아직도 있지만 가래톳이나 림프절이 붓고 아픈 것으로 보아 선페스트로 여겨진다. 대부분의 경우 죽음으로 빠르게 진행되었다. 페스트는 박테리아인 예르시니아 페스티스가 일으키는데 이 균은 검은 쥐와 같은 매개동물을 통해 벼룩에 의해 퍼지게 된다.
페스트는 아마도 중앙아시아의 스텝지역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이며 거기에서 몽골군에 의해 서쪽으로 옮겨진 것으로 추측된다. 몽골군이 크림반도 카파의 제노바 식민지를 포위하자 제노바의 배들이 시실리로 돌아올 때 이 페스트가 크림반도로부터 퍼지게 되었다. 이 질병은 1347년 10월에 처음 그 존재를 드러냈고 이태리로부터 시계방향으로 가까이 사르디니아섬 코르시카 발레아레스제도로 퍼진 후 유럽 본토로 퍼졌다.
흑사병은 영국에 1348년 6월 멜콤 레지스(웨이머스)로 들어와 11월에 런던까지 번졌다. 그리고 1361~1391년 사이에 네 번의 대규모 유행이 있었고, 15세기까지 계속되었는데 대유행은 1406, 1464, 1479, 1500년에 일어났다. 대유행 사이에도 작은 규모의 유행들이 있었다. 유럽의 도시와 마을들에서는 그 외곽에 이 환자들을 치료하는 페스트진료소로 알려진 특수한 시설들을 만들었다. 이 중의 하나가 1475년 스코틀랜드의 인치케이드에 세워졌고 1594년 런던의 성바르톨로뮤병원 옆에 인접한 3에이커의 땅에 또 하나가 문을 열었다.
그 후에는 페스트가 거의 풍토병으로 자리 잡았고 가장 큰 페스트가 1665년에 발생했다. 페스트는 이 시기 이후에 의사와 아포테카리의 활동이 존경받는 직업으로 자리 잡게 한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는 영국에서의 첫 번째 전염병의 유행 때 확실해 졌다. 일단 흑사병의 심각한 고비는 마침내 가라앉았지만 그 댓가는 엄청났다. 유럽 전체 인구 중 1/3이 페스트로 인해 죽은 것으로 추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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