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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목항과 도보순례, 약사도 필요하니까요"

  • 영상뉴스팀
  • 2014-09-01 06:14:58
  • [동행 인터뷰] 세월호 도보순례 나선 이승용 약사
volume

26일 오전 7시 30분. 충북 오창에서 천안 병천 방향 510번 지방도의 아스팔트 길을 14명이 걷고 있었다.

그들의 손에는 노란 깃발이 들려 있었는데 펄럭이는 깃발마다 이름 석자가 검정색 명조체로 박혀 있었다.

싸늘하게 식은 몸이라도 돌아오지 못한 세월호 희생자의 이름이다. 걷는 이들의 얼굴은 그늘졌는데 등에 붙인 희생자의 얼굴 사진은 웃고 있었다.

지난 11일 전남 진도 팽목항을 출발해 3백여 킬로미터가 넘는 길을 걸어온 '생명과 정의의 도보 순례단'. 신학대 학생과 교수가 주축이 된 도보 행렬에 검게 얼굴을 그을린 약사가 있었다.

세월호가 진도 앞바다에서 허무하게 침몰하자 사건 이틀만에 팽목항으로 가장 먼저 달려간 이승용(43) 약사였다. 아내 노 란 약사에게 해남 소망약국을 맡기고 그는 팽목항을 제집마냥 눌러 앉아 희생자 가족들을 약으로, 마음으로 위로했다.

이번 순례에 동참하는 그의 마음을 잘 알기에 기자도 같이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인터뷰 요청에 그의 대답은 거절.

"싫어요. 말할 기운도 없어요. 도보 일정이 새벽 5시에 시작해서 점심 먹으면 2시간 정도 잠을 자야 오후에 다시 걸을 수 있습니다. 미안해요."

다음날 아침 무작정 충북 청원 오창교회로 찾아갔다. 오창을 출발해 충남 천안으로 가는 게 순례단의 이날 일정이었다.

오전 7시 도착한 교회에 인기척이 없다. "10분 전에 출발 했어요."

교회 앞 마당을 빗질하던 분의 설명이다. 20여분을 쫓아가자 저 멀리 바람에 펄럭이는 노란 깃발의 무리가 보였다.

기자도 같이 걸었다. "왜 걸으시는 거예요?" 그 이유가 듣고 싶었다.

"팽목에 있다보면 여러가지 소리들이 들려요. 그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으면 마음이 움직이게 되지요. 장기적으로 봉사하던 사람들과 도란도란 얘기하다 보니까 서울이나 안산에서 걸어 내려오시는 분들은 많이 있는데 팽목에서 그 아픔을 같이 했던 느낌 그대로 안산이나 서울로 가시는 분들은 없었다... 우리가 그걸 한번 해야되지 않겠느냐는 제안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졌고."

깃발에는 실종자로 남아 있는 단원고 선생님의 이름이 적혀 있다.
서울로, 안산으로 가자는 제안에 이 약사 혼자 올라갈 수는 없는 일이다. 진도 봉사약국에서 알게 된 호남신학대 오현선 교수의 도움으로 도보 순례단은 꾸려졌다.

아직 돌아오지 못한 10명. 이 약사는 그들이 가족의 품에 돌아올 수 있도록 수색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최소한 우리가 걸을 때 만큼은 실종자 수색을 중단하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우리가 걸어 올라갈 때까지 최대한 수색을 하라 이거죠. (우리가 걷는 이유는)그런 의미도 있어요."

50분 정도 걸었을까. 천안 아우내로 가는 길목인 성산삼거리 언덕길을 앞두고 10분간 휴식을 취했다. 그의 발에 엄지손가락만한 물집이 잡혀 있었다.

"아야야!" 털석 앉자마자 저절로 나오는 소리. 물집 잡힌 발바닥과 긴장한 근육이 반응하는 소리였다.

"천주교 십자가 순례단 먼저 하셨던 분에게 어떤게 제일 힘들었냐고 물으니까 딱 한마디로 얘기하더라구요. 물집 잡히는 거 조심해라. 발가락 양말을 신고 두 컬레를 겹쳐 신으면 덜 잡힌다. 열흘까지는 성공했어요. 근데 그 다음부터는 그냥 생기네요."

무게를 측정할 수 없는 희생자 가족들의 정신적 고통을 나누고자 걸었는데 정작 현실에서는 물집이라는 하찮은 것이 더 크게 아팠다.

약사라는 직업도 물집과 근육통 앞에선 속수무책.

"주로 진통제 줘요. 진통제 말고 뭐 있어요? 파스. 물집 잡힌 거 터트려 주기."

가출한지 보름이 넘었다. 집에서는 이런 아빠를 어떻게 생각할까.

"첫째 아이랑 진도 팽목에서 해남 우수영까지 1박2일 같이 걸었어요. 나머지 얘들은 아빠 거기 왜 있냐 그러지. 그러면서 빨리 먹을거 사와라. 장난감 사와라 하지."

큰애를 뺀 둘째와 셋째 어린 자식에게 아빠가 왜 도보 순례를 하는지 설명하기란. 세월호라는 사건이 정확히 설명되지 않은 것처럼 어렵다.

도보 순례자들의 무거운 발걸음.
해가 산등 위로 올라 탔다. 자연은 선한 자나 악한 자 모두에게 공평하다. 순수한 이들에게 아량을 베풀지 않을 태세다. 오전 8시 30분. 밤 동안 내려앉은 이슬이 기화하면서 스믈스믈 땅 열이 올라왔다.

"(팽목항이)거리가 가까운데 있었고 다행히 직업이 약사라서 동참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고 지금도 약사는 이 거리에서도 필요하고. 이 행진에서도 필요하고."

팽목항 봉사, 도보 순례 참여를 그는 다 우연으로 설명했다. 뒷말은 그의 본심인 듯 했다. '약사는 이 거리에서도 필요하고'라는 말.

팽목항 봉사약국만 해도 그렇다. 사고 초기 약사 수요가 있었다고 하지만 아직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팽목항에)오시는 분들이 또 오세요. (봉사하러)몇 번씩 오세요. 또 온 이유가 있겠죠. 초기야 정말 약사들이 부족해서 많은 약사가 필요해서 그랬지만 지금은 제가 (팽목항)출발하기 직전까지는 (환자가)50명도 채 안 오시거든요. 근데 24시간 (봉사약국을)지킨다는 것은 힘든 일이잖아요."

16일째 걸은 사람치고 이 약사의 몸 상태는 외형적으로 좋아 보였다. 유가족과의 함께 식사를 하다보니 살이 오히려 쪘다고 말했다.

"세월호 (봉사약국)시작할 때보다는 5킬로그램 쪘어요. 4월달보다는 이런말 하면 좀 뭐하지만 가족들과 식사하는 것도 하나의 봉사라고 생각했거든요. 이 가족과 식사하고 저 가족과 식사하고 그렇다보면 하루에 많이 먹을때도 있어요. 지금은 좀 (살이)빠지고 있어요."

순례단은 이날 천안의 한 대학에서 묵고 다음날 평택으로 올라갔다. 최종 목적지인 안산분향소가 점점 가까워질수록 이들의 몸은 점점 축 나겠지만 순례단의 이름처럼 우리사회의 정의와 생명 의식은 더 살아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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