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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스터디

선택진료와 상급 병실료의 종언(終焉)

  • 데일리팜
  • 2014-09-04 06:14:00
  • 신광식 약사(보건학 박사)

선택 없는 선택 진료, 그리고 원치 않은 상급 병실료가 그것의 폐지로 인한 수입 손실을 수가인상으로 보상하는 것으로 종료된다고 한다. 중요한 환자 불만사항이 이로써 해소되고 상식은 회복되는 것일까? 이제 종료가 된다고 하니 그 의미를 한번은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원무과에서 증상을 얘기하니 진료 과를 정해주는데 그 과장님은 선택 진료에 해당이 되고 다른 의사를 선택할 수도 없지만 진료비는 비급여 항목으로 선택 진료비가 추가되어 있다. 병원에 입원을 하여야 하는데 6인실이 없어 4인실에 배정이 되었는데 역시 상급 병실료를 비급여로 지불해야 한다.

얼핏 대수롭지 않은 문제같이 보이지만 이 때문에 달라지는 급여비의 규모가 의약분업이래 최대라고 한다. 문제는 언제나 이런 식이었다. 진료의 내용에 있어서도 환자에게 설명하고 선택을 할 수 있게 해도 좋은 것들을 실제에 있어서는 선택할 수 없도록, 그리고 선택할 수 없었던 그 선택에 대하여 톡톡히 댓가(?)를 치르도록 한다.

환자의 피해는 톡톡히 치르는 비급여 항목의 금액보다 선택의 봉쇄에 있을지 모른다. 선택은 가능성의 개방을 의미한다, 폭넓은 가능성은 사실 의료의 치료적 결과 못지않게 과정과 선택행위, 거기에 참여하는 인간들의 상호작용과 같은 삶의 내용과 행복까지 연결되어 있다.

선택의 폭은 치료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A라는 치료방식인가 B라는 치료방식인가? 아니면 두 가지 다인가? 특별한 비급여 검사법을 꼭해야하는가 아닌가...와 같은 치료적 내용 구석구석에 놓여있지만 병원 문에 들어선 환자가 병원을 나설 때는 대개 이미 마련된 길을 따라갈 뿐이다. 하지만 이렇게 흔적만 남겨놓고 단절되어버린 다른 선택의 길 끝에는 인지행위나 능동적인 실천 같은 상실된 인간 본연의 모습이 얼핏 투영되어있다.

선택 진료가 특별히 추가되는 비용의 청구를 정당화시킨다면 그 선택에 무언가 특별한 효용성이나 행복이 연결되어 있다는 가정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강요된 허위의 행복이다. 행복인지 불행인지는 그것을 결정하는 주체의 선택행위를 필수로 하는 것이다. 그것이 없는 조건에서 환자가 특별한 복지나 행복이 가정되었다면 그것은 선택이 아닌 강요, 억압이거나 기만이 된다.

의료기관이 되묻는, 정당화의 구실은 언제나 그런 것이다. “환자가 뭐를 아는가? 선택을 보장하면 이로운 선택을 할 능력이 있는가....” 하지만 이런 구실로서 구성한 복잡한 비선택의 미로에 빠진 환자는 행복이나 치료적 성과에 대한 만족보다는 무력함과 무능감, 수동성에 빠지고 질병은 단순한 고통과 불만의 상징이 되어간다. 여기에 더하여 결과를 놓고 보면 선택은 환자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병원이나 의사의 수입이나 편리를 위한 것일 뿐이다.

현대 산업사회는 인간을 훈련된 무능에 빠뜨리고 조작된 유능함을 구사하는 공급자는 도덕적 긴장을 상실하고 스스로의 분배의 몫을 키우는 행동의 타성에 젖어든다.

그리고 불만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면 무언가 요란한 수정의 과정을 한바탕 엮어낸다. 선택 진료비와 비급여 상급 병실료의 폐지는 그 전형적 패턴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읽어야 할 것은 환자의 불만이 계산서에 쓰인 이해하지 못할 비급여 항목의 금액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대수롭지 않게 막아버린 환자의 선택에는 그들에게 스스로를 주체적 인간으로 느끼고 행복을 증대 시킬 수 있었던 기회의 상실이 있었고 그것의 봉쇄에 대하여 사실 환자는 알고 있고 분노감마저 녹아 있다는 사실이다.

의료계도 수입의 감소와 증가가 편중되게 진행될 수 있다는 우려가 크지만 보장되지 못한 선택을 폐지하는 대가로 그것으로 창출되던 수입 전부를 합법적인 수가인상으로 보전해준다는 것은 사실 소비자 입장에서 억울하고 부당한 것이다. 이런 정책에 누군가 특별히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 것도 수가를 떠나서 의료가 더 나아지기를 바라는 국민의 관용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최근 들어 의료의 위기를 얘기하는 목소리들이 의료계 내부에서도 들려온다. 지하철에 빼곡히 붙은 성형수술 등 상업의료 광고들은 그런 실정을 충분히 짐작케 한다. 하지만 환자의 선택을 무심히 막아버리고 질을 떨어뜨리는 의료 행태가 지속된다면, 그러한 실정을 문제로 느끼지 않는다면 사정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선택 진료와 상급 병실료의 폐지가 다만 두 가지의 불합리한 관행의 제거에 그치는 게 아니라 봉쇄된 선택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환자의 상실된 주체성을 복원하라는 메시지로 전달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지나친 바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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