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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스터디

"이쁘다 이쁘다 하시니…받은 게 많아요"

  • 정혜진
  • 2015-02-18 06:35:00
  • |이·약·궁|보청기 살 돈 선뜻 건네 박수받았던 그 약국

[6] 부산 보수동 우리들약국

손님에게 보청기 살 돈 100만원을 건넸다? 잘 알지 못하는 어르신에게 아무 조건 없이 적지 않은 돈을 줄 수 있었던 건 7년 간 '손님을 아끼고 생각하는 마음'으로 운영해온 약국의 평범한 에피소드 중 하나였을 뿐이다.

부산 중구 보수동에서 7년째 #우리들약국을 운영하고 있는 #이현경 약사(36.부산약대)는 작년 크고 작은 매체에 '천사 약사'로 소개된 화제의 인물. 직접 만나 그의 약국을 둘러보니 동네 주민을 생각하는 마음이 약국 여기저기 속속들이 배어있다.

"지난해 방송사에서 섭외가 왔을 때, 벌써 2년이나 지난 일이었어요. 처음 라디오 방송에 나가면서 잡지, TV 등 여기저기서 연락이 오니 당황스럽더라고요. 라디오에 소개된 것도 작가가 '부산에는 방송 안되고 서울에만 나온다'고 해 응한 것인데, 전국에 방송되고 아는 분들이 '그런 일이 있었냐'고 아는 척 해주시니 쑥스럽습니다."

아는 사람에게 지나가다 한 말이었다. 말이 전해지면서 기자 귀에 들어갔다. 방송에서 연락이 왔을 때에도 '아침에 전화만 받아주면 된다'고 했단다. 이 일이 이렇게까지 커질 줄 몰랐다.

어르신 쉼터 역할을 하는 약국 앞 벤치.
"잡지에 나온 걸 약국에서 어르신들이 보시고는 '실물이 훨씬 예쁜데 사진이 이상하게 나왔다'며 친근하게 말씀하실 정도로 자기 일처럼 좋아하세요."

우리들약국은 부산에서도 오래된 동네 보수동 골목에 있다. 절판된 헌책을 구할 수 있는 보수동 책방골목이 유명한, 어르신들이 많이 거주하는 곳이다. 가까이에 최근 흥행한 영화배경이 된 국제시장이 있고, 가정집 촬영지도 약국에서 몇 걸음 되지 않을 만큼 가깝다. 약국 바로 맞은 편에 노인복지회관과 양로원이 자리한다. 노인 환자가 많이 거주하는 지역이다 보니 근무약사 2명과 돌아가며 일요일까지 문을 연다.

"손님도 대부분 어르신들이고, 약국을 편하게 왔다갔다하세요. 오시면 꼭 앉아 쉬어가시고요. 그래서 약국 앞에 벤치를 놓았어요. 한번은 페인트칠 하려고 의자를 치웠더니 의자 다시 놓으라고들 하시더라고요."

그는 우리들약국이라는 이름과 동네 분위기가 좋아 1년 정도 된 약국을 인수했다. 약대를 다닐 때부터 '약국을 하면 우리약국이란 이름을 써야겠다'고 다짐했던 차, 집에서 가까운 곳에 우리들약국을 보고 개국을 결심했다. 병원약사 1년 반, 파트타임 약사로 일하던 중이었다.

"20대 어린 나이에 개국했으니 고생을 안했다 할 수 없었죠. 멀지 않은 곳에 유명한 난매약국이 있어요. 처음 한두달은 가격 때문에 스트레스도 받고, 이 일대 모든 약국을 다니며 가격조사도 했죠. 그렇게 한두달 해보니 가격으로 승부해서는 끝이 없겠다 싶더라고요. 우리 구매가가 그 약국 판매가보다 5000,6000원이 비쌌어요. 손님들과 가격 때문에 시비도 일었죠.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었어요."

이전부터 일반약과 건기식에 관심이 많았다. 가격이 아닌 정확한 정보와 상담으로 승부하겠다고 맘 먹었다. 주변에 병의원이 있는 곳도 아니어서 조제보다는 상담에 치중했다. 개국하고 3~4년 동안 온갖 학회와 교육, 스터디를 마다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싶단다. 하지만 열심히 공부한 건 비단 그때문만은 아니다.

약국 내부(왼쪽)와 저렴한 비타민을 전면에 배치한 모습(오른쪽)
기다리는 손님을 위해 준비한 잡지(왼쪽)와 주민들 대신 받아준 택배(오른쪽)
"우리 약국 맞은 편에 40년 역사의 김약국이 있었어요. 이 일대에서 자란 사람이면 누구나 김약국에서 약을 지어 먹고 컸다 할 수 있을 정도로 유명했던 곳이에요. 약사님이 명망이 높고 주민 신뢰가 높았어요. 제가 약국을 여니 김 약사님에게 갔던 신뢰가 고스란히 저에게도 오더라고요. 주민들은 제가 말씀드린 건 곧이곧대로 다 따르시고 다 구매하시니 공부를 안 할 수 없었어요."

약사 말을 100% 신뢰하는 어르신에게 마진이 좋다고 더 비싼 제품을 권할 수도, 얼렁뚱땅 넘겨 짚어 적당한 제품을 골라줄 수 없었다.

"약국은 작지만 일반약과 건기식은 거의 없는 제품 없이 모두 구비하고 있어요. 가격도 다양하게 갖춰놓고요. 경제적 여유가 없는 분도 드실 수 있는 저렴한 제품부터 체질에 맞는 고가 제품까지, 환자분 건강에 도움되는 게 뭔지 고민하고 그렇게 상담하면 복약순응도도 높아지고 건강이 호전되는 게 보입니다."

약국하는 얘기와 사는 얘기를 주고받다보니 지난주에는 서태지 콘서트를 보고 왔다고 한다. 눈이 반짝이며 어릴적 우상을 이제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한 인간으로 볼 수 있어 좋았다며 이 약사는 20대의 순수한 젊음을 잃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그런 그에게 다시 보청기 어르신의 근황을 물었다.

"얼마전 그 분 집들이에 갔다 왔어요. 어르신들에게 봉사다니며 그런 분들이 사는 쪽방이라는 데를 자주 돌아봤는데 정말 불편하거든요. 그분도 그런 2평 남짓 되는 쪽방에 생활하시다 돈도 모으고 노력해서 15평짜리 방을 구하셨다고 저희를 초대하셨어요. 약국 직원들과 집들이를 갔는데, 책과 꽃으로 잘 정돈된 방이 그렇게 인상적일 수 없더라고요."

말을 잇는 이 약사의 눈이 그렁그렁했다.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 같다. 그는 원체 눈물이 많은 편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이현경 약사.
"2년도 지난 일이고, 자세한 건 저도 기억 못했거든요. 그런데 그 할아버지가 같이 방송에 나오며 그러시더라고요. '이 약사님에게 돈을 갚을 때마다 '희망을 잃지 말라, 꼭 좋아질 거다, 절대 절망하지 말라'고 얘기해줬다고요. 저는 기억도 못한 걸 할아버지는 소중하게 생각하시고 매번 돈을 갚으러 오실 때마다 편지나 책을 갖다 주셨어요. 경제적으로 어려울 지 몰라도 존경 받을 만한 어른이라는 생각에 제가 더 감사하더라고요."

그는 그저, 그 상황이었다면 누구라도 할아버지를 도왔을 거라고 말했다. 100만원이란 돈이 지금 당장 나보다 그분께 목숨만큼 절실해 보였다고, 자신이 그 시간에 약국에 없었으면 다른 약사님이 주셨을 거라고 말이다.

"요즘 마케팅에서 고객 설득을 넘어 고객 감동이 필요하다는 말 많이 하잖아요. 감동을 위해선 진심이 빠질 수 없다고 생각해요. 저희 약국 환자들이 저를 믿고 저를 진심으로 아껴주시니 저 역시 진심이 나올 수 밖에 없어요. 오며가며 인사하고, 챙겨주시고, '이쁘다 이쁘다' 아껴주시니 저는 제가 드리는 것 보다 주민분들께 받는 게 훨씬 많다고 느껴요. 동네도 좋고 어르신들도 좋고. 저는 약사되길 참 잘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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