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기사를 찾으시나요?
닫기
2025-12-29 20:46:25 기준
  • 청구
  • #평가
  • 수출
  • #한약
  • #HT
  • #신약
  • #치료제
  • #병원
  • 임상
  • #정책

일그러진 해피드럭 활용법…성인용품점 가보니

  • 어윤호
  • 2015-03-04 12:25:00
  • '삶의 질' 높이려다 '삶의 끝' 앞당기는 한국 남성들

해피드럭(Happy Drug)은 질환의 치료보다 삶의 질 개선을 목적으로 복용하는 약물을 일컫는다.

그런데, 우리 사회가 해피드럭을 대하는 방식을 보고 있자면 '한심하다'는 표현이 떠오를 때가 더러 있다. '삶의 질'을 높이는 대가로 '삶의 끝'을 앞당기고 있는 이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짝퉁 의약품을 복용하는 남성들을 보면 그 용기가 대단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백번 양보해 가방이나 옷은 그럴 수도 있다지만 짝퉁 의약품이라니, 그것도 의사의 처방이 필요한 전문의약품인데 말이다.

약의 효능은 둘째치고라도 제대로 된 용량인지, 또 주성분 외 어떤 성분이 포함됐는지 알 길이 없다. 한국 남성들이여,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알고는 있는 것일까?

해피드럭
1%는 무서워하면서 70%는 무시하는 아이러니

제약회사들이 의약품을 판매하려면 최소 3개 이상 임상연구를 반드시 진행해야 한다.

이중 2상 연구는 적정 용량을 정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뤄진다. 이 단계에서 부작용이 효능을 상회하고 용량을 낮췄을 경우 기대 효능 입증이 어려워 개발이 어그러지는 약물은 수두룩하다.

짝퉁이 난무하는 '비아그라(실데나필)'를 보자. 이 약은 50mg과 100mg, 2개 용량이 허가돼 있다. 환자의 상태와 병력에 따라, 의사가 판단·선택해 처방한다.

용량이 낮으면 당연히 발기력이 떨어진다. 반대로 용량이 과하면 어떻게 될까. 단순히 두통이나 구토로 끝나면 다행이다. 심근경색, 뇌경색, 심부전, 이로 인한 사망까지 부작용 사례는 다양하다. 약물의 작용기전 자체가 혈관 확장이다. 심혈관계 위험성은 철저히 모니터링해야 한다. 짝퉁을 복용한 4명 중 3명 꼴로 부작용을 경험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70%가 넘는 확률이다.

국내 짝퉁 발기부전치료제 시장 규모는 1000억원 가량으로 추정된다. 중국에 이어 세계 2위라고 한다. 정품 시장이 1000억원대니 발기부전 약물 복용자 절반이 짝퉁을 먹고 있다는 얘기다.

그러면서 1% 확률이 두려워 대머리 예방을 포기한다. 발기부전약제와 함께 대표적 해피드럭으로 꼽히는 약물이 탈모치료제다. '프로페시아(피나스테리드)'는 FDA가 공인한 남성형탈모치료제다. 이 약을 포함한 전문의약품 탈모약 시장이 약 500억원 규모인데, 전체 탈모 관련 시장(기기, 화장품 등)이 3조원대에 육박한다.

점유율 부족의 원인중 하나가 성기능 부작용이다. 약의 성분이 남성호르몬에 관여 하다보니, 이상반응에 발기부전 등이 포함돼 있다.

프로페시아의 대표 임상을 보면 발기부전 발생률이 1.8%며 위약은 0.7%다. 밀가루 약과 0.9% 차이다. 이것이 꺼림칙해 머리가 빠져도 탈모방지 샴푸 등 보조요법에 연연하는 남성들이 수두룩하다.

온라인사이트 하단에 새겨진 정부부처 로고
기자, 짝퉁 '비아그라'를 사러가다

아이러니다. 기자는 70% 위험도를 감수하는 심리가 궁금해져 짝퉁 비아그라 를 찾아 나섰다.

인터넷 구매는 쉬웠다. 몇번의 포털사이트 검색 만에 판매사이트를 찾았고 일반 인터넷 쇼핑몰과 같이 결제가 가능했다. 놀라웠던 건 해당 홈페이지 하단에 식약처, 공정위 등 정부 부처 로고가 표기돼 있다는 점이었다.

관련 지식이 없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정품으로 오인할 만한 비주얼이었다.

"뭐 그렇게까지"하며 오바라고 생각했는데, 화이자(비아그라 제조사)가 얼마전 비아그라 정품 확인이 가능한 웹사이트까지 개설한 이유가 수긍이 가는 순간이었다.

이해가 안 가는 건 가격이었다. 해당 사이트에서 비아그라 가격은 고용량(100mg) 18정에 13만원이었다. 정품 비아그라(1정당 1만3000원 가량)와 큰 차이가 없다. 더욱이 제네릭은 정당 약 3000~5000원이다.

짝퉁을 찾는 이유가 가격 때문은 아니란 얘기다. 그렇다면 짝퉁의 메리트는 무엇일까? 내친김에 오프라인 구매도 감행해 보기로 했다. 성인용품점을 가면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는 한 지인의 정보에 따라 서울 관악구에 있는 한 성인용품점을 찾았다.

한 상가건물의 구석진 곳에 자리잡은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니, 희귀한(?) 물건들이 즐비한 진열대 사이로 40대 후반 가량 중년 남성이 나를 맞았다.

멋쩍게 물었다. "비아그라를 좀 사려고 하는데요."

"잘 찾아 오셨네요. 저흰 정품만 취급합니다. 얼마나 드릴까요? 참고로 최소 판매 단위가 30정입니다."

확신에 찬 주인의 말투는 의아했다. 일반적으로 구입 나이대가 아니였기에 처음에 약간 경계하는 눈빛을 보이더니 너무도 쉽게 매대 밑에서 제품을 꺼내 들어 내게 보였다.

"정품 맞죠?"

"손님, 화이자라고 아시죠? 비아그라 만드는 회사. 그 회사가 글로벌 제약사인데요, 법인이 한국에만 있는게 아닙니다. 동남아나 유럽에 걸쳐 전부 법인이 설립돼 있거든요. 저흰 동남아 쪽 공장에서 정품을 직접 들여옵니다. 약을 보시면 알겠지만 국내에서 처방받는 제품과 똑같습니다. 10년 넘는 단골이 한둘이 아니에요"

기자가 구매한 가짜 비아그라와 정품 비아그라(왼쪽부터 정품, 온라인 구매, 오프라인 구매 품목)
간단한 질문 한마디에 그는 다년간 쌓은 전문지식을 좔좔 풀어냈다. 비아그라 개발 스토리까지 나올 기세였다. 마지막엔 복약지도 뺨치는 복용법 설명도 잊지 않았다.

가격은 30정에 30만원. 온라인 구매품보다 저렴했지만 여전히 짝퉁이 경쟁력을 갖는 이유는 되지 못했다. 생각을 뒤로하고 가게를 나서려는 순간, 주인장이 답을 내놓았다.

"아 손님, 제 명함 한장 가져가세요. 한번 직접 방문해서 거래를 트신 다음부터는 전화만 주시면 택배배송 가능합니다. 이런데 들락거리는거 쪽팔리고 번거로우시 잖아요."

'쪽 팔려서'였다. 성인용품점을 가는 것처럼, 병원에 가서 의사에게 "나 발기부전이니, 처방해 주세요"라고 말하는 것이, 처방전을 들고 약국에 들어가 비아그라를 건네 받는 것이 쑥스럽고 번거로운 것이다.

같은 남자로 공감은 간다. 그러나 명심하자. 앞서 언급했듯 70%가 부작용을 겪는다. 제 입에 스스로 폭탄을 털어 넣는 셈이다. '삶의 질'은 절대 '삶' 자체를 앞서는 가치가 될 수 없다.

귀가 후, 혹시나하는 마음에 화이자가 개설한 정품인증 사이트를 통해 고유번호를 입력해 보려했다. 그러나 내가 구입한 두 제품 모두, 고유번호 자체가 없었다.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 해주세요.
  • 댓글 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운영규칙
  •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첫 댓글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