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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약자, 피해자 코스프레'에 갇힌 도매업계

  • 조광연
  • 2015-04-27 06:14:55

회원사 이익을 대변하는데 앞장서 온 한국의약품유통협회가 또 한차례 투쟁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그간 개별 다국적 제약회사 및 국내 제약사와 유통마진 상향조정 투쟁에서 매번 승전고를 올림으로써 자신감을 가진 유통협회가 투쟁의 대상으로 찍은 곳은 '온라인 의약품 쇼핑몰'이다. 협회는 다국적사 등 이전 제약사와 마진 전쟁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온라인 쇼핑몰 중에서 온라인팜 한 곳만 표적으로 삼아 "사업을 포기하라"고 선언했다. "그렇지 않으면 물리력 행사도 불사하겠다"고 양자택일을 요구 중이다. 온라인팜과 한미약품이 들어있는 사옥 앞 시위도 면밀히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온라인팜이 한미약품이 생산한 의약품을 주로 취급하는 판매회사라는 점을 내세워 유통협회는 '제약회사 한미약품'을 비 윤리적 공간으로 내몰고 있다. 기업의 비윤리를 극적으로 더 강조하고 싶어서 일까. 유통협회는 느닷없이 한미약품을 대기업으로 분류했다.

그렇다면 한미약품은 유통협회의 주장처럼 대기업이긴 한 것일까. 매출 순위로 따져 제약업계에서 한미약품이 상위권에 자리잡고 있긴 하지만 그래본들 작년말 기준으로 5800억원 규모에 불과하다. 제약업계에 앞서 매출 1조원을 돌파한 도매업체에 비하면 크게 봐도 60% 수준에 불과하다. 또 1조원에 도달하지 못했으나 금명간 1조를 돌파할 '도매 대기업'이 적지 않은 것도 현실이다. 제약업과 도매 유통업으로 비교해도 예전처럼 제약업이 압도적이지 않다. 지금은 폐기된 의약품 유통일원화제도를 통해 실효적 지배권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의약품 유통의 비전을 제시하며 업의 발전을 이끌어야 할 유통협회는 유통업을 '스스로 약자, 피해자'로 규정하는 프레임을 고수하고 있다. 해서 '대형마트들이 서민 골목상권을 장악하고 있다'는 사회적 문제의식에 유통협회가 기대려는 것인데 논리가 빈약하다. 유통협회가 온라인팜 대신 제약회사인 한미약품을 부각시키려는 데는 '역할분담 논리'를 내세우기 위해서일 것이다.

'제약은 연구개발과 생산, 도매는 판매와 유통'이라는 명제는 제약산업과 유통업이 이 땅에 나타난 이래 금과옥조처럼 되뇌어지고 있다. 지금도 이같은 명제가 살아서 유통되는 건 현실이 그렇지 못하다는데 있을 것이다. 유통업계는 지금껏 물류 중심으로 성장해 왔다. 물류시설에 투자하고 확충하는데는 나름 노력을 기울였지만 상대적으로 영업인력을 육성함으로써 제약업계로부터 판매의 영역을 이양받는데는 소홀했던 게 사실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다국적제약회사와 마진 문제가 자주 불거지는 것도 유통업계가 물류중심으로 발전한데 기인한다. '단순 물류 업무에 왜 두 자릿수 가까운 마진을 제약이 지불해야 하지? 외국에선 그렇지 않은데'라는 의문이 들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들어 제약회사와 손잡고 특정품목 전체를 판매와 유통을 전담하는 신생 도매업체들이 출현하는 현상은 유통업계 안에 질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유통업계 미래나 국내 의약품산업을 위해 매우 바람직한 조짐으로 그 발전 과정을 유심히 지켜 볼 일이다.

배타적 견제구와 경고로 미래는 열리지 못한다

물류개선에 치중했던 도매업계가 우수 영업인력 육성에 소홀한 것 못지 않게 간과했던 분야는 온라인에 대한 이해부족과 대처였다. 의약분업이후 자신들의 주 고객이 된 약국이 온라인 거래로 돌아서고 있는데도 말이다. 온라인 쇼핑몰의 장점이 무엇인가. 시공 초월이다. 재고 관리에 눈뜨기 시작한 약국들은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여유있는 시간에 언제든 온라인에 접속해 주문하고, 물류전문 택배업체들이 성실하게 배송하는 상황에서 도매업체들은 택배업체들과 비교우위 경쟁을 했을 뿐 의약품 유통과 관련한 본질적 변화는 주목하지 못했다. 심지어 온라인몰들이 약국이 현장에서 겪는 반품 등의 어려움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상황까지 진화했음에도 가끔씩 온라인몰을 집단의 이름으로 견제하고 경고했을 뿐 시장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고, 본질을 보려 눈을 크게 뜨지 않은 게 사실이다. 유통협회가 온라인팜에 선전포고를 한 것도 결국 이같은 과거와 현재의 연장선이다. 자신들의 주 고객인 약국의 필요성은 간과한 채 유통업계는 언제까지 자신들만의 생존권을 내세우고 개별 회사를 억누르는 방식으로 활로를 열 수 있다고 믿는 것일까. 물론 자신들의 회원사에 대한 집단적 공격에도 점잖은 척 말이 없는 제약협회가 있는 한 얼마간 유효한 수단은 될 것이다.

이제 더는 도매업계가 생계형 중소기업들의 집단이 아니다. 매출 규모에서 제약사들을 크게 앞서가는 업체들이 줄여 잡아도 10곳은 족히 넘는다. 유통협회가 시위 등 물리력으로 진입장벽을 만리장성처럼 치고 높인다해도 내부적으로 부익부빈익빈 구도와 갈등은 점차 뚜렷해 질 것이다. 유통협회가 대외적으로 나서 기업 한 두곳의 마진을 높인다고 해서, 온라인몰에 견제구를 날린다고 해서 그 혜택으로 모든 회원사가 복된 나날을 영위할 수는 없다. 온라인몰의 일원인 온라인팜이 도매업권에 부담이 된다면 실력경쟁으로 우위에 서면 된다. 그 이후는 시장이 결정해 줄 것이다. 그런데도 온라인팜에 입점한 자신들의 동료들을 보고 "거기서 나왔으면 좋겠다"고 한다거나 시위를 통해 망신을 준다고 해서 본질적인 문제가 풀리지는 않을 것이다. 도매업계가 정말 주목해 볼 부분도 있다. 온라인몰 못지 않게 CSO로 성장중인 작은 도매업체들이다. 지금은 리베이트 통로라는 식으로 비판받고 폄하돼 있지만, 이들은 지금까지 고정된 유통업의 정체성을 새롭게 만들고 있는 곳들이다. 제약회사 마케팅과 판매를 대신할 정도로 변신할 게 틀림없다고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불투명한 미래에 활로를 열려면 유통협회는 제일 먼저 '약자, 피해자라는 코스프레 프레임'을 벗어던져야 한다. 주먹을 불끈 쥐고 정공법으로 맞서야 한다. 이와 함께 협회가 업계에 가로놓여 있는 모든 문제들을 다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처럼 태도를 보여서도 안된다. 협회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구분지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회원사들에게 공연한 기대감만 심어줄 뿐이며, 자칫 허송세월하다 사회와 시장의 변화를 놓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협회는 또 '도매업 허가가 전매특허권이 아니라는 사실' 인정하고 직시해야 한다. 그럴 때만 유통업계의 나갈 방향이 더 치열하게 연구되고 시도될 수 있을 것이다. 예를들어 종전 온라인 쇼핑몰 거래 장터를 도매업계 스스로 만들어 도매업체들이 입정해 온라인 시장을 선점같은 것 말이다. 자신들이 가진 역량을 바탕으로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고 누군가를 배타적으로 밀어내는데서 혁신은 나올 수 없다. 언제나 시장은 경쟁의 영역이라고 받아들일 때, 유통업계의 새로운 진로도 활짝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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