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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원도 못가져 가는 인생…알맞게"

  • 조광연
  • 2015-06-02 06:14:59
  • 초대석| 아흔 다섯 현역 CEO 김기운 백제약품 회장

"운동화는 이 자식아, 부잣집 새끼들이나 신는거여, 부잣집 새끼들이나….(草堂自傳, 金基運 著)" 아침 끼니를 굶고, 점심끼니 마저 기약이 없었던 가난하고 엄혹했던 일제치하의 어느 추석이 가까워졌을 무렵 어머니는 악에 받쳐 운동화 한 켤레를 사달라고 조르는 아들 김기운을 회초리로 때리며 소리 질렀다.

김기운 백제약품 회장은 아흔 다섯 현역이다. '뜨거운 피와 붉은 입술'을 가졌던 스물 일곱 청년은 1946년 백제약방을 창업한 이래 69년을 의약품 유통업 외길을 걸으며 많은 것을 이뤄냈다.

'호판단가운 지속적경영(好判斷加運 持續的經營).' '좋은 판단에 운이 따르면 지속적으로 이어 경영한다'는 이 말은 김 회장의 인생여정과 딱들어 맞는다. 어찌보면 매순간 좋은 판단을 했다기보다, 무엇인가 판단 한 후에 그를 성취하기 위해 무진장 애를 써 결과적으로 좋은 판단이었다는 추억으로 기억된다는 말이 더 정확할 듯하다.

서당에서 천자문과 명심보감을 뗀 소년 김기운은 도저히 중학교에 갈 형편이 안돼 보통학교를 1년 더 다녀 7년 만에 무안보통학교를 졸업했다. "아버지와 큰 아버지가 1년 더 다니면 큰 덕이 될 것이라고 하신 말씀이 귓전에 생생한데 그 깊은 뜻을 아직도 모르겠다"고 김 회장은 말한다.

월급 3원짜리 견습사원으로, 열여섯 나이에 의약품 도매업을 겸했던 이또상점에 취직한 김 회장은 당시 55세 이또사장이 늘 공부하는 모습을 보며 자신도 통신 강의록을 가지고 약종상이 되기 위해 밤낮없이 공부했다. 약방을 열기위해서였는데 당시 나라 경제사정에서 약방은 희망이었기 때문이다.

나이 스물 즈음 약종상시험 1,2차에 합격(50명이 지원해 3명 합격)했으나 최종적으로 어리다는 이유로 불합격처리돼 낙담했지만, 곧바로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외운것 잊어버릴까 겁이났어. 안 잊어버리려고 다시 공부에 매달렸지." 그 과정에서 폐결핵까지 앓고 만주까지 갔던 김 회장은 결국 약종상 시험에 합격해 1946년 8월6일 목포에서 백제약방 문을 열었다.

백제약방은 69년 세월 속에 작년 매출 7455억원의 백제약품으로 자라났다. 백제약품 역사는 사실상 대한민국 의약품 유통선진화의 역사나 한가지다. 서울영업본부, 호남영업본부, 영남영업본부 등 3본부는 완벽하게 전국 유통망을 연결한다.물류와 상류라는 측면에서 최고기업으로 꼽힌다. 관계회사로 1982년 설립된 제약회사 초당약품이 있다.

백제약방은 육영과 육림의 뿌리다. 초당대학교와 백제고등학교를 비롯해 초당림을 관리 운영하는 초당산업이 있다. 초당산업은 전남 강진의 1000Ha 돌산에 흙을 퍼나르며 500만주의 나무를 심어 국내 최대 인공육림 단지로 조성했다. 그곳에 가본 사람들은 '대한민국의 숲'이라고 말하곤 한다. 김 회장은 산림자원 조성과 관리에 노력한 공로로 1987년 동탑산업 훈장을 수훈했으며, 2007년에는 제2회 대한민국녹색 대상을 수상했다. 5월15일 오전 김 회장의 집무실을 방문했을 때 그는 고요한 표정이었다. 십수년전 인터뷰 갔을 때와 다르지 않았다. 온화한 표정에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에 1946년 8월6일 희망에 부풀어 백제약방의 문을 열던 청년의 모습이 겹쳐보이는 듯했다. 해서 현역 장수 CEO에게 건강 관리법만 들으려던 계획은 과거이야기로 확장됐다.

아시아 최장수 CEO 김기운 회장은 저녁엔 꼭 혈압을 잰다. 아침엔 체중을 달아본다. 의사가 체중을 62kg에 맞추는 게 좋겠다고 한 때문이다. 김 회장은 내일 어떻게 되더라도 오늘 지켜야할 원칙에 충실한 게 건강관리법의 첫걸음이자 끝이라고 조언한다.
▶ 올해 연세가?

"다 아시면서. 1921년생이니까 아흔 다섯이겠지."

▶ 1946년 백제약품 창립 이래 아시아 최장수 현역 CEO이세요.

"그렇게 됐나봐. 1946년에 백제약방 문을 열었으니 올해가 69년째네."

▶2013년에 세계 최장수 CEO로 상도 받으셨죠.

"한국전문경영인 학회에서 상을 받았어. 그쪽에서 조사를 했는데 미국이나 일본, 유럽에서 나같은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다고 하더군."

▶ 요즘도 꼭 출근하세요?

"그저 차한잔 마시고 집에 들어가는 게 전부지 뭐. 회사야 전문 경영인들이 다 알아서 잘하니까 내가 뭘 걱정할 게 있겠어."

▶ 회장님, 아주 정정하시고 표정이 온화로우신데요. 건강을 유지하는 비법을 알고 싶습니다.

"보기엔 좋을지 몰라도 나이 먹으면 병원 살다시피해. 어쨌거나 기자양반이 물었으니…. 웬만하면 요즘 90까지는 사는 거 아닐까? 건강법이라는 뭐 있겠어. 그렇지만 오늘 살다가 내일 죽더라도 원칙이라는 건 있어야 한다고 봐."

▶어떤 원칙을 갖고 있으신데요?

"저녁엔 꼭 혈압을 재 봐. 아침에는 체중을 달아보고. 의사가 말하기를 체중은 62kg을 넘지 않도록 하래. 그게 내게 맞는 체중이라는 거지. 체중이 넘치면 당뇨가 온다고 했어. 가급적 맞추려 애는 써. 이게 원칙인거지 나한테는."

▶그래서 혈압과 체중은 원칙대로 유지하세요?

"혈압은 130에 70을 유지하고 있어. 체중은 오늘 아침에 달아보니 62.5kg이야. 500그램이 넘치는 거지. (62kg에) 맞춰야 겠지. 다행히 당뇨는 없어."

▶식사는 어떻게 하세요?

"아침과 점심 두끼 먹어. 저녁 한끼는 꼭 채소와 과일쥬스를 마시지. 주스만으로 허기가 지면 식사를 약간 해 보충하는 정도야."

▶건강에 특히 좋은 음식이 있을까요? 잠은 ?p시간 이나 주무세요.

"그런 건 없어. 대신 무엇이든지 먹어. 가리지 않고. 하루에 다섯시간에서 일곱시간은 푹 자지."

▶운동은 어떻게 하시죠?

"실내 운동을 해. 한 10분은 몸 푸는 운동을 하고, 20분 정도는 걷는 거야. 99%는 매일 운동을 해. 모르긴 몰라도 1%도 안빠질지 몰라. 서울대 노인연구소장님이 그러셨던가? 걷는게 제일 좋다고. 30분 정도 매일 걸으면 100세는 보장한데."

▶이렇게 건강하신 걸 뵈니 담배는 아예 피시지 않은 것 같습니다.

"좀 피웠었지. 끊은지 35년된 거 같아."

▶식사조절, 운동 못지 않게 마음관리도 중요할 것 같습니다.

"마음관리는 간단해. 난 평생 오늘 일은 오늘 일, 내일 일은 내일 일이라고 생각하며 살았어. 오늘 일은 오늘 끝을 내야해. 공연히 걱정할 필요없어. 화내도 밥먹고 잘 자, 난."

▶어떻게 그게 가능하죠?

"모르지. 사람들이 내게 대범하다고는 했었지. 부모님도 그렇게 말씀하셨던 게 생생해. 아주 오래된 이야기지만 세무서에서 자료를 다 가지고 갔었어. 그래도 밥먹고 잘 잤어. 그랬더니 아버지 어머니가 그러시대. 목에 가시가 걸려서 밥이 넘어가냐고. 잠을 못자면 약을 먹고라도 자야해. 그래야 내일 일을 할 수 있잖어."

▶ 제게도 원칙이 제법 있긴하지만….

"올바른 인식을 공감하여 그 공감을 행동으로 옮길 때 원칙이라고 할 수 있어. 모두가 담배 끊어야 한다고 생각하잖아. 그러면 공감한 거니까 행동으로 옮겨야지. 그래서 초당대학 등 학교에 가면 학생들에게 강조해. 전공과목의 달인이 되어라, 영어 회화를 꼭 해라, 인성이 중요하다고 해. 공감하면 실천하라는 거지. 뭔가 실천하는 사람은 정직하고 부지런한 거지. 70년 가까이 회사를 해 보니까 결국 정직하고 부지런한 사람과 같이 일할 수 밖에 없어."

▶ 백제약방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이름에서 백제하면 호남을 이르는 말로 아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허허허. 그런 뜻이 아니야. 백명을 구한다는 뜻이지. 다시 넓혀서 말하면 천명을 구하고, 만명을 구한다는 뜻이야. 의약품을 통해서 말이지. 삼국시대의 백제가 아니야. 난 신라 경순왕 후예야."

중학생이어야 할 열여섯 나이에 월급 3원(당신 이발요금 10전~20전)을 받고 의약품을 취급하던 이또상점 견습사원으로 들어간 소년 김기운(왼쪽)과 아흔 다섯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2015년 5월의 김기운 회장.
▶ 백제약방 어떻게 창업하셨나요?

"그 때 나이가 스물 일곱이었어. 지금하고는 환경이 아주 다를 때였어. 서당을 한 3년 다니고, 고향에서 보통학교인 무안초등학교를 졸업했지. 열여섯 되던 해에 영락없이 농사를 지어야 했는데 부모님이 '그래선 안된다'며 목포로 보냈어."

▶ 목포에 나오셔서 무슨 일 하신거죠?

"중학교라고 하는 게 전국에 몇개 없었지. 대학은 말할 것도 없고. 반은 일본 사람들이 들어가고, 나머지를 한국사람들이 들어가던 시절이야. 끼니를 걱정하던 때니 학교는 언감생심이지. 도매상에 취직했어."

▶ 왜 하필 도매상이었죠?

"당시에 목포는 한반도 6대 도시 중 하나였어. 일본 사람들이 쌀을 일본으로 실어나르던 통로였지. 의약품 도매상이 2군데 있었는데 한마디로 잘나가는 곳이었어. 이 도매상 약업무에서 일했는데 낮에는 일하고 밤엔 양약종상 강의를 3년 받으며 공부했어. 한번 들어가본 이또사장이 나이가 55세 였는데 공부를 하는거야. 충격을 받았어. 그때 나라 분위기는 그 나이에 공부를 안했거든. 지금이야 다르지만. 그걸보고 나도 아주 열심이었지. 꼭 약방을 차리겠다는 꿈이 생겼으니까. 일본에 주문해 통신강의록을 보고 공부했어. 제조만 없지 나머지 기술이 다 나와 있어 밤새는 줄 몰랐어. 조제나 뭐나 지금과 전혀 달랐는데 약 원료가 한 3000종 됐어. 전부 지식을 습득했어." ▶ 도매에서 소년이 한 일은 구체적으로 뭐였죠?

"약 주문하는 거야. 일본 다케다 같은데다 주문을 넣고 했지. 후지사와, 산쿄, 쿄와 등 다 주문했어. 그리고 나면 전국 큰 약국에 약을 보냈어. 열심이니까 회사에서 인정해 줬어. 일본인 사장이 주문하고 이런 업무를 맡겼는데 그 사장이 열심히하고 능력만 되면 누구든 차별을 하지는 않았어. 나중에 회사 경영하는데 큰 참고가 됐어."

▶ 도매상 입사해 받은 첫 월급 얼마였죠?

"월급으로 3원 받았어. 나중에는 10원까지 받았지. 월급이 세배나 오른 거지."

▶ 3원이면 어느 정도 값어치가 있는 거죠?

"당시에 이발한번 값이 15전이었어. 일본 유학생에 게 30원씩 보내던 시절이었지. 나는 이돈 아끼려고 산꼭대기 이발소에서 머리를 잘랐어. 거긴 10전이었어."

▶ 백제약방이 거대기업 백제약품이 되었습니다. 69년 역사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대목은 무엇이죠?

"언제나 그랬지만 외국 도매 유통은 아주 발전해 있었어. 따라가기 바쁜 시절이었지. 우린 목포를 벗어나 전국 유통망 갖고 싶었는데 월경 금지같은 저항이 아주 ?옥? 그래서 주장했어. 법에도 없고, 언젠가 없어질 월경금지를 넘어서기 위해 참 많이 싸웠어.

당시 내게 동조하는 사람 없었어. 제약사들도 시끄럽게 한다 해서 다들 싫어했지. 내 주장을 반박하지 못하면서도 말야. 힘들었지만 전북으로, 영남으로 유통망을 넓혀 나갔지. 15년 남짓된 이야기야. 근데 지금은 어때. 지역 제한 없잖아. 지점 하나 낼 때마다 치열한 투쟁을 벌였고, 항상 욕먹고 살았어. 그렇지만 법대로 하고 싸우고 견뎠어."

▶ 69년 경영으로 얻은 건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경영을 통해 네가지를 얻었다고 생각해. 우리 가정의 평화, 회사 직원들의 평안, 이웃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능력, 사회환원이지 않을까 싶어."

▶ 우리 사회에 복지가 화두입니다. 기업의 역할은 없을까요.

"회사가 고용을 창출하니 역할이 없다고 할 수는 없지. 그렇지만 직원 복지나 사회 환원은 아직도 부족하다고 봐. 모든 기업들이 복지하는 마음을 가진다면 국가 복지도 걱정할 것 없을 것 같아. 죽어서 돈 갖고 가는 건 아니니까. 쓸만한 데 알맞게 써야 해. 나 뿐 아니라 모든 사업가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돈…. 악착스러워봤자 10원도 못가져가. 공수래공수거야."

▶ 회장님 인생을 지탱하는 좌우명이 궁금합니다.

"많은 돈 가지려하지 말라는 거야. 먹고 살 정도면 된다고 생각해 왔어. 그래서 양은숙 복지재단에 마음을 많이 쓰고 있어. 10억원 출연해 시작했는데 지금 출연금이 50억 가량돼. 매년 3억씩 모으고 있는데 올해도 대학생들 50명에게 장학금 1억원 주고, 연탄지원, 쌀 지원에 1억7400만원 가량 썼어. 소아암 수술 지원비 1000만원도 책정해 놨어. 독거노인 등 복지사업 10년 정도했고. 백제약품과 초당약품 등 회사 수익이 나아지면 더 출연해서 재단이 커질수록 혜택을 높여가고 싶어. "

▶ 한 사람의 의지가 푸른 숲을 만들었습니다. 돌산에 흙을 옮겨가며 심은 나무가 장성한 거죠. 속되지만, 나무로 재미 좀 보셨나요.

"그렇지 않아. 나라가 보장을 해주면 좋을 텐데. 일본같은데는 1/3 정도는 나무를 사주거든. 인건비가 남자 는 하루 10만원, 여성은 4만원 정도인데 숲을 관리하는데 참 많이 들어. 다른 건 몰라도 산림 관리인에게 만큼은 매일 전화걸어 보고 받고 체크해. 매월 초엔 꼭 내려가 직접 확인해. 내가 시작한 일이니 내가 완성해야지."

90분 가량 인터뷰를 마치고 나설 때 김기운 회장은 말했다. "수고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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