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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코스닥 30년, 화려한 기념식보다 중요한 것[데일리팜=차지현 기자] 이립(而立). 서른 살을 이르는 말이다. 공자는 서른에 뜻을 세우고 스스로 설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코스닥이 올해 30주년을 맞았다. 1996년 341개 기업으로 출발한 코스닥은 지난해 기준 1827개 기업이 상장한 시장으로 커졌고 시가총액은 개장 당시 7조원에서 지난달 기준 580조원 규모로 확대됐다. 숫자로 보면 코스닥은 지난 30년간 크게 성장했다. 하지만 이립의 나이에 들어선 시장이라고 보기에는 아직 풀어야 할 숙제가 적지 않다. 부실기업 퇴출 지연과 불성실공시, 반복적인 자금조달, 우량기업 저평가 등 누적된 문제가 시장 신뢰를 흔들어왔다. 현재 코스닥은 외형 성장의 단계를 넘어 성숙도를 증명해야 하는 과제 앞에 놓여 있다. 이 같은 문제의식 속에 금융당국과 한국거래소가 코스닥 체질 개선을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당국은 상장 유지요건 강화와 세그먼트 도입, 밸류업, 기술특례상장 고도화 방안 등을 잇따라 내놨다. 이를 통해 부실·한계기업은 신속히 걸러내고 우량기업은 제대로 평가받도록 하겠다는 구상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코스닥의 본래 역할인 '모험자본 시장'의 성격이 약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코스닥의 존재 이유는 이미 완성된 기업만 골라내는 데 있지 않다. 아직 이익을 내지 못하더라도 기술력과 성장 가능성이 있는 기업에 자금을 공급하고 그 기업들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도록 하는 데 있다. 그러나 이번 정책대로 선별과 퇴출에만 무게를 두다 보면 성장 시간이 필요한 기업까지 한계기업으로 묶일 수 있다. 특히 제약바이오처럼 연구개발 기간이 길고 사업화까지 시간이 걸리는 업종은 단기 실적이나 재무지표만으로 평가받을 경우 압박이 커질 수밖에 없다. 아직 성과가 숫자로 확인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성장기업이 위험기업처럼 비칠 수 있다는 얘기다. 세그먼트 도입도 마찬가지다. 우량기업을 따로 구분해 제대로 평가받게 하겠다는 취지는 타당하다. 다만 우량기업과 관리 대상의 기준이 불명확하면 시장 내 낙인 효과가 생길 수 있다. 실제 업계에서는 벌써부터 제도 도입에 따른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팽배하다. 기업 입장에서는 장기 성장 전략보다 어느 군에 들어가느냐, 관리 대상으로 분류되지 않느냐가 더 큰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물론 코스닥 시장의 체질 개선과 투자자 보호가 시급한 과제라는 점에는 십분 공감한다. 그럼에도 제도 개혁이 기업을 나누고 솎아내는 방식에만 그쳐서는 안 된다. 당국이 해야 할 일은 어떤 기업을 퇴출할지 정하는 것만이 아니라 어떤 기업에 시간을 줄 것인지 구분하는 일이다. 부실기업은 과감히 걸러내되 제약바이오처럼 사업화까지 긴 시간이 필요한 업종에는 산업 특성을 반영한 정교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30주년을 맞은 코스닥에 필요한 것은 화려한 기념식보다 분명한 원칙이다. 우량기업을 키우고 한계기업을 솎아내는 일은 필요하지만 그 기준은 모험자본 시장이라는 코스닥의 본래 역할을 지키는 방향이어야 한다. 다음 30년의 성패는 얼마나 많은 기업을 걸러냈는지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혁신기업이 시장 안에서 버티고 성장했느냐로 평가될 것이다.2026-07-07 06:00:40차지현 기자 -
[데스크 시선] 주가 하락기 증여, 무조건 꼼수일까[데일리팜=이석준 기자] 기업 오너의 증여는 시작부터 의심을 받는다. 주가가 오르면 "왜 비싼 시기에 증여했느냐"는 말이 나온다. 주가가 내리면 "절세를 노렸다"는 비판이 이어진다. 어느새 기업 승계는 어떤 시점을 선택하든 의심부터 받는 일이 됐다. 최근에도 상장기업 오너 일가의 증여를 둘러싼 논란이 반복됐다. 사업 전략이나 승계의 배경보다 증여 시점이 먼저 도마에 오른다. 주가가 저점이면 절세라는 비판이 이어지고, 그 비판은 이내 '편법'이나 '꼼수'라는 단정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한 번쯤은 다른 질문도 던져볼 필요가 있다. 주가가 내리면 증여는 정말 죄가 되는 것일까. 주가가 낮을수록 증여세 부담이 줄어드는 것은 사실이다. 현행 세법은 일정 기간 평균 주가를 기준으로 증여재산을 평가한다. 따라서 주가 하락기에 증여하면 세금이 줄어드는 효과가 발생한다. 이것은 숨겨진 비밀도, 기업만 아는 편법도 아니다. 법이 정한 과세 방식이다. 그런데 우리는 언제부터 절세와 꼼수를 같은 의미로 사용하기 시작했을까. 절세는 법이 허용한 범위 안에서 세 부담을 줄이는 행위다. 반대로 꼼수나 편법은 법의 허점을 악용하거나 취지를 훼손하는 경우를 뜻한다. 둘은 분명히 다른 개념이다. 우리도 절세를 한다. 연금저축에 가입하고,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를 활용하며, 받을 수 있는 세액공제를 꼼꼼히 챙긴다. 이를 두고 비난하는 사람은 없다. 법이 허용한 제도를 활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기업 승계도 원칙은 다르지 않다. 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지분을 증여하고 세금을 납부했다면 그것은 제도의 활용이다. 현행 증여세 평가 방식이 적절한지는 얼마든지 토론할 수 있다. 그러나 제도를 바꾸지 않은 채 제도를 활용했다는 이유만으로 기업을 비난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비켜가는 일이다. 물론 모든 저가 증여가 정당하다는 뜻은 아니다. 기업가치를 의도적으로 훼손하거나, 내부정보를 이용해 증여 시점을 설계하거나, 소액주주에게 피해를 떠넘겼다면 당연히 엄중한 비판과 제재를 받아야 한다. 시장의 감시도 바로 그런 행위를 향해야 한다. 아무런 위법 행위나 불공정 정황이 확인되지 않았는데도 주가가 낮았다는 이유만으로 '꼼수'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은 성급한 일반화일 수 있다. 의심은 가능하지만, 의심이 곧 사실이 될 수는 없다. 오히려 이렇게 묻고 싶다. 그렇다면 기업은 언제 증여를 해야 하는가. 주가가 오르면 "고평가 시점을 이용했다"고 하고, 주가가 내리면 "절세를 노렸다"고 한다. 실적이 좋으면 비싸게 평가받는다고 문제 삼고, 실적이 나쁘면 싸게 평가받는다고 의심한다. 어떤 시점을 선택해도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면, 과연 정답은 무엇인가. 기업 승계는 언젠가 반드시 이뤄져야 하는 경영 행위다. 특히 장기간 연구개발이 필요한 제약·바이오 산업에서는 경영의 연속성과 안정성이 기업 경쟁력과 직결된다. 승계를 무조건 미루는 것이 항상 정답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이유다. 실제로 승계가 늦어질수록 상속세 재원 마련을 위해 대규모 배당이나 지분 매각, 담보대출 등 또 다른 부담이 발생하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결국 중요한 것은 증여 시점이 아니다. 승계 과정은 투명했는가. 적법하게 세금을 납부했는가. 소액주주의 권익은 보호됐는가. 승계 이후 책임경영으로 기업가치를 높였는가. 시장이 끝까지 확인해야 할 것은 이 질문들이다. 감시는 필요하다. 의심도 필요하다. 그러나 의심이 곧 결론이 되어서는 안 된다. 주가가 낮을 때 증여했다는 사실은 검증의 출발점일 뿐이다. 그 자체가 꼼수라는 결론이 될 수는 없다. 우리가 비판해야 할 것은 주가가 낮을 때 증여한 기업이 아니다. 법을 악용하고 시장의 신뢰를 훼손한 기업이다. 주가가 내렸다는 이유만으로 증여가 죄가 될 수는 없다. 죄가 되는 것은 주가가 아니라 원칙을 무너뜨리는 행위다.2026-07-06 06:00:42이석준 기자 -
[기자의 눈] 바이오USA, 이제는 결과를 말할 때[데일리팜=황병우 기자] 바이오USA가 끝나면 국내 바이오기업들의 보도자료가 쏟아진다. 글로벌 기업과 수십 건의 미팅을 진행했고, 파트너링을 확대했으며, 기술이전에 대한 관심을 확인했다는 내용이 이어진다. 하지만 시장이 궁금한 것은 행사장에서 누구를 만났느냐가 아니다. 그 만남이 지금 어디까지 이어졌느냐다. 물론 이를 단순한 홍보 문구로만 볼 일은 아니다. 바이오USA는 대표적인 글로벌 파트너링 무대다. 국내 기업 입장에서 이 자리에 꾸준히 이름을 올리고, 글로벌 기업과 미팅을 이어가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 활동인 것도 사실이다. 신약 개발은 단기간에 성과가 나오기 어려운 산업이다. 글로벌 제약사와 논의가 이뤄졌다고 해서 곧바로 계약으로 연결되는 것도 아니다. 실제로 의미 있는 논의가 진행되더라도 비밀유지 계약, 추가 실사, 데이터 검토, 내부 의사결정 과정을 거치기 전까지 외부에 공개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바이오USA 이후 반복되는 낙관적 표현은 한 번쯤 돌아볼 필요가 있다. 매년 행사 직후마다 "글로벌 관심을 확인했다", "파트너링 논의를 확대했다", "기술이전 가능성을 높였다"는 설명이 반복된다면 시장이 궁금해하는 질문은 자연스럽게 다음 단계로 이동할 수밖에 없다. 관심을 받았다는 말보다 중요한 것은 이후 어떤 논의가 이어졌는지다. 미팅이 있었다는 사실보다 중요한 것은 구체적인 진전 여부다. 바이오USA 참석이 일회성 이벤트인지, 실제 사업개발 전략의 일부인지도 결국 행사 이후의 움직임에서 드러난다. 글로벌 파트너링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요소 역시 단순한 기술 소개에 머물지 않는다. 후보물질 하나의 가능성뿐 아니라 플랫폼의 확장성, 후속 파이프라인, 임상 개발 역량, 반복적인 글로벌 접점 형성 능력까지 함께 검토된다. 현장에서 파트너링 논의를 진행하는 글로벌 기업들이 연속성을 중요하게 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바이오기업 입장에서는 억울한 측면도 있다. 시장은 빠른 성과를 요구하지만 기술이전이나 공동연구 계약은 속도전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초기 미팅 이후 수개월, 길게는 1년 이상 검토가 이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행사 직후 당장 계약을 공개하지 못했다고 해서 성과가 없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하지만 반대로 행사 참석 자체가 성과처럼 소비되는 흐름도 경계해야 한다. 글로벌 기업과 만났다는 사실만으로 기술 경쟁력이 검증됐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파트너링 미팅의 양만큼 중요한 것은 논의의 질이고, 현장 반응보다 중요한 것은 후속 검증이다. 국내 바이오기업들이 바이오USA를 통해 글로벌 무대에서 존재감을 넓히는 것은 분명 긍정적이다. 특히 바이오 분야의 자본시장 침체와 기술특례 상장 이후 검증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해외 파트너와의 접점 확대는 기업가치와 생존 전략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글로벌 기업과의 대화 경험은 기술의 위치를 확인하고 개발 방향을 조정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다만 이제는 표현보다 결과를 축적해야 할 시점이다. '논의 확대'가 실제 추가 미팅으로 이어졌는지, '관심 집중'이 데이터 요청이나 공동검토로 전환됐는지, '파트너링 강화'가 다음 행사에서도 이어지는 연속적 관계로 남았는지 살펴봐야 한다. 바이오USA는 매년 반복된다. 그래서 더 중요하다. 한 번의 참가보다 중요한 것은 다음 해에도 같은 기술을 더 성숙한 데이터로 설명할 수 있는지, 같은 파트너와 더 깊은 논의를 이어갈 수 있는지, 그리고 시장에 약속한 방향을 실제 결과물로 보여줄 수 있는지다. 바이오USA의 진짜 성과는 행사가 끝난 뒤 증명된다.2026-07-03 06:00:42황병우 기자 -
[기자의 눈] 탈모약 급여 논의가 남긴 질문[데일리팜=손형민 기자] 탈모 치료제 건강보험 급여화 논의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탈모는 생명을 위협하는 질환은 아니지만 환자에게는 적지 않은 심리적·사회적 부담을 안겨준다. 치료비 부담을 줄여야 한다는 주장도 꾸준히 제기돼 왔고, 이에 공감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반면 한정된 건강보험 재정 안에서 급여의 우선순위를 먼저 고민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탈모를 단순히 미용의 문제로 치부할 수는 없다. 실제 진료 현장에서는 우울감이나 대인관계 위축을 호소하는 환자도 많고, 젊은 연령층일수록 삶의 질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연구 결과도 꾸준히 발표되고 있다. 급여화 필요성을 주장하는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다만 건강보험이라는 제도 안으로 들어오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진다. 건강보험은 필요한 모든 치료를 보장할 수 있는 제도가 아니다. 결국 한정된 재정 안에서 무엇을 먼저 보장할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따라서 급여 여부는 질환의 중증도와 미충족 의료수요, 임상적 유용성, 비용효과성, 재정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수밖에 없다. 최근 취재 현장에서 반복적으로 접한 화두 중 하나는 건강보험 급여의 높은 문턱이었다. 혁신 항암제는 허가를 받고도 급여까지 수년을 기다리는 경우가 적지 않고 희귀질환 치료제 역시 비용효과성이라는 높은 문턱을 넘지 못해 환자들이 치료 기회를 놓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치매 치료 환경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 증상이 악화된 이후 대응했던 시대에서 조기 진단과 조기 치료로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지만 새로운 치료제가 실제 환자에게 도달하기까지는 여전히 시간이 필요하다. 초고령사회에 진입했지만 국가예방접종사업(NIP)은 여전히 소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고령층 예방접종 확대 논의는 좀처럼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비만 치료 역시 만성질환 관리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공감대는 커지고 있지만 정책 변화는 제한적이다. 여기에 언급하지 못한 과제들까지 더하면 건강보험 보장을 둘러싼 논의는 계속 쌓여가고 있다. 의료기술은 빠르게 발전하고 새로운 치료제는 끊임없이 등장하지만 이를 어떤 원칙으로 건강보험 안에 담아낼 것인지는 여전히 결정하기 쉽지 않은 숙제다. 물론 질환마다 특성이 다르다. 환자 규모도 다르고 질병 부담과 치료 목적도 상이하다. 탈모와 암, 희귀질환, 치매를 단순히 같은 저울 위에 올려놓고 우선순위를 정할 수도 없다. 그렇다고 급여 논의의 원칙까지 달라져서는 안된다. 어떤 질환은 사회적 관심이 높다는 이유로 빠르게 공론화되고, 어떤 치료는 충분한 임상적 근거를 갖추고도 재정 부담을 이유로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면 건강보험의 우선순위를 둘러싼 의문은 계속 제기될 수밖에 없다. 탈모약 급여화 논의가 남긴 질문도 여기에 있다. 탈모를 급여화할 것인지 아닌지를 넘어 건강보험이 어떤 원칙으로 보장 범위를 넓혀갈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다. 건강보험은 국민 모두가 보험료를 함께 부담하는 사회보험이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급여를 결정할 때마다 더욱 신중한 우선순위가 요구된다. 건강보험의 보장 범위는 사회적 관심이나 정치적 필요보다 의료적 필요성과 환자 혜택, 재정의 지속가능성이라는 원칙 위에서 결정돼야 한다. 그 기준이 분명할수록 앞으로 이어질 급여 논의도 더 큰 공감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2026-07-02 06:00:40손형민 기자 -
[특별기고] 기술보다 합의가 만든 대만의 '환자 중심' 기적6월 26일부터 28일까지 서울특별시약사회 방문단(김위학 회장, 변수현 부회장, 양취매 국제이사)은 대북시약사공회(타이베이시약사회) 창립 80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대만 타이베이행 비행기에 올랐다. 오랜 역사만큼이나 끈끈한 유대를 자랑하는 대만 약사 동료들은 공항 영접부터 숙소 안내까지 따뜻한 환대로 맞아 줬다. 우리는 대북시약사회의 헌신적인 지원에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대한민국 신라 천마총 금관(1/3크기)과 이사진들을 위한 선물을 전달하며 우정을 다졌다. 이번 방문의 가장 큰 수확은 환대 그 이상이었다. 바로 조제대 앞 약사의 위상을 완전히 바꿔 놓은 대만의 국가 단일 클라우드 시스템(NHI MediCloud)의 역동적인 현장을 직접 목격한 것이었다. 요양기관에서 '환자 중심'으로, 패러다임의 전환 대만은 1995년 전 국민 건강보험 제도를 도입한 이래 단일 공보험 체제 아래서 방대한 의료 데이터를 축적해 왔다. 이 통합 데이터 뱅크를 기반으로 탄생한 것이 바로 NHI MediCloud 시스템이다. 대만 시스템의 핵심은 데이터의 축이 병의원이 아닌 '환자'에 있다는 점이다. 환자의 동의를 전제로 전국의 모든 의료기관에서 발생한 최근 6개월간의 진료, 투약, 검사, 수술 기록 등이 하나의 클라우드에 실시간으로 통합된다. 현장 약국(予志藥局, 王明媛 상무이사 약국)에서 마주한 조제실 풍경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환자가 약국에 들어와 보험카드를 제출하는 행위 자체가 '열람 동의'로 간주되며, 약사는 약사 카드와 환자 카드를 동시에 인증해 조제대 화면에서 환자의 의료 전반을 즉시 확인한다. 처방전을 받는 순간 환자의 6개월치 양·한방 투약 이력은 물론 알레르기와 검사 결과(혈액검사, X-ray, MRI, CT 등)까지 한눈에 들어오는 구조다. 조제하는 약사에서, 환자의 약물 전체를 관리하는 '임상 약사'로 MediCloud 덕분에 대만의 약사들은 추정이 아닌 '실제 임상 데이터'에 근거해 다제약물 상담을 수행하고 있었다. AI 시스템이 약물 상호작용이나 중복투약을 능동적으로 알려줘 환자의 안전을 선제적으로 보호한다. 행위별 수가제의 한계를 '데이터'로 극복 우리와 마찬가지로 대만 역시 진료나 검사가 늘수록 보상이 커지는 '행위별 수가제'를 채택하고 있어 본질적으로 과잉·중복 진료의 유인이 존재한다. 그러나 대만 정부는 기술과 데이터를 통해 무차별적인 중복 진료를 차단하고 스마트한 거버넌스를 정작시켰다. 의사와 약사가 사전 조회를 통해 중복을 걸러내되 환자가 꼭 필요한 상황이라면 동의 하에 필요한 중복 검사는 허용하는 유연함도 갖추고 있다. 이 시스템을 통해 총 약품비의 2~5%를 절감하는 잠재력을 입증했고, 처방 건당 약품 수와 중복 투약을 실질적으로 감소시켰다는 통계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물론 이 클라우드에도 비급여 품목이나 일반의약품 데이터가 빠진다는 한계가 존재하지만, 대만은 이를 보건당국이 구축한 가정약사 시스템으로 보완하며 지역사회 약사가 가정 단위로 촘촘하게 빈틈을 메우도록 제도화했다. 더불어 환자가 직접 모바일 앱 'My Health Bank'를 통해 자신의 의료 기록을 관리하게 함으로써 데이터의 진정한 주인이 환자임을 명확히 하고 있다. 거버넌스의 교훈-기술이 아니라 합의다 대만 MediCloud가 주는 가장 큰 울림은 시스템의 화려함이 아닌 이를 구축해 온 10년의 '사회적 합의 과정'에 있다. 정부와 건강보험공단은 물론 의약단체, 소비자단체, 국회까지 모든 이해관계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단계적으로 시스템을 통일해 왔다. 초기 의약사들의 반대와 직역 갈등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국가가 인내를 갖고 설득했고, 무엇보다 약사회가 '환자 안전'이라는 거부할 수 없는 명분을 쥐고 설계 초기 단계부터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이 성공의 열쇠였다. 우리 대한민국 역시 대만과 동일한 단일 공보험(건강보험)이라는 훌륭한 토대를 이미 가지고 있다. 다만 우리의 DUR, 건강정보 고속도로 등 시스템은 여전히 기능별로 분산돼 있고 약사의 임상 정보 접근 역시 제한적이다. 대만의 사례는 분산된 기능을 '환자 중심의 단일 뷰(View)'로 모으는 것이 우리의 핵심 과제임을 똑똑히 보여준다. 창립 80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방문했다 더 큰 자산을 얻어온 것 같아 내심 뿌듯함이 든다. 환대해 준 타이페이시약사회 윤대지 회장, 왕언팅 위원장, 왕명원 이사님께 감사를 전하며 짧은 일정이었지만 동행에 나섰던 김위학 서울시약사회장님과 양취매 국제이사님의 노고에도 고마움을 표한다. [필자 약력] 성균관대 약대 현 서울 중구약사회장 현 서울시약사회 부회장2026-07-01 11:59:25데일리팜 -
[전문가 칼럼] 약사 조제 실수, 어떤 법적 책임이 발생할까조제는 약사의 전문성과 집중력이 가장 직접적으로 요구되는 업무다. 처방전 확인부터 의약품 선택, 용량과 용법 검토, 조제 및 최종 검수까지 어느 한 단계에서라도 오류가 발생하면 환자의 건강에 영향 줄 수 있다. 약사는 조제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전문가이지만, 약사도 사람인지라 간혹 실수가 있을 수 있다. 특히 처방전이 한꺼번에 몰리는 문전약국이나 여러 약사가 교대로 근무하는 대형약국에서는 조제 실수가 발생할 가능성이 더욱 크다. 이와 관련해서 약사 출신 변호사이자 약국전문변호사로 활동하는 이일형 변호사는 “조제 실수가 발생했다고 해서 모든 사건에서 동일한 법적 책임이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며 “실수의 내용과 환자에게 발생한 피해, 인과관계, 약국의 검수 시스템 등을 구체적으로 살펴봐야 한다”고 설명한다. 약국에서 발생하는 대표적인 조제 실수 조제 오류의 형태는 다양하다. 이름이나 포장이 유사한 의약품을 혼동하는 경우, 처방된 용량과 다른 함량의 의약품을 조제하는 경우, 복용 횟수나 기간을 잘못 표시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정제와 서방정 등 제형을 혼동하거나 처방 의약품 일부를 누락하는 사례도 있다. 처방전 자체에 오류가 있었지만 약사가 이를 확인하지 못한 경우에는 처방의 적정성 검토와 의사에 대한 확인 의무가 쟁점이 될 수 있다. 조제 실수의 법적 책임을 판단할 때는 단순히 약이 바뀌었다는 결과만 보지 않는다. 약사가 당시 부담했던 주의의무가 무엇이었는지, 통상적인 검수 절차를 준수했는지, 오류를 발견한 뒤 어떤 조치를 했는지 등이 함께 검토된다. 조제 실수에 따른 민사상 손해배상책임 잘못 조제된 의약품을 복용한 환자에게 손해가 발생하면 약사는 민사상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할 수 있다. 손해배상 범위에는 잘못된 약을 복용하면서 발생한 추가 진료비와 치료비, 일하지 못해 발생한 손실, 후유장해에 따른 손해 등이 포함될 수 있다.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도 문제될 수 있다. 다만 조제 실수가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환자가 주장하는 모든 손해가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조제 오류와 환자의 증상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어야 한다. 환자의 기존 질환과 복용 중이던 다른 의약품, 실제 복용량과 복용 기간 등이 중요한 판단 자료가 된다. 따라서 사고가 발생하면 처방전과 조제기록, 의약품 재고 및 전산기록, 복약지도 내용 등을 보존해야 한다. 사실관계를 정확히 확인하지 않은 상태에서 책임을 전부 인정하거나 반대로 사고를 축소·은폐하려는 대응은 분쟁을 키울 수 있다. 환자가 다치면 형사책임도 가능한가 조제 실수로 환자가 상해를 입거나 사망한 경우에는 업무상과실치상 또는 업무상과실치사죄가 문제될 수 있다. 실제 와파린 1일 처방용량이 7.5mg이었는데 약사가 3mg으로 잘못 조제해 환자가 약 4개월 동안 처방량보다 적게 복용한 사건이 있었다. 이후 환자에게 운동실조와 뇌경색증 등이 발생했고, 형사재판에서 약사의 주의의무 위반과 인과관계가 쟁점이 됐다. 춘천지방법원 2020년 1월 17일 선고 2017노780 판결에서는 1심이 약사에게 금고 8개월과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으나 항소심은 원심을 파기하고 벌금형을 선고했다. 이 사례는 조제 실수가 단순한 환불이나 교환 문제에 그치지 않고 형사사건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특히 와파린처럼 치료 범위가 좁고 용량 변화에 따른 위험이 큰 의약품은 보다 엄격한 확인 절차가 필요하다. 실수로 다른 약을 조제하면 처방 변경죄인가 약사법 제26조는 약사가 처방전을 발행한 의사 등의 동의 없이 처방을 변경하거나 수정해 조제하는 행위를 금지한다. 그렇다면 실수로 다른 약을 조제해 결과적으로 처방 내용이 변경된 경우에도 약사법상 처방 변경에 해당할까. 전주지방법원 2017년 6월 7일 선고 2016고단2065 판결은 알프람정 0.25mg 대신 졸피람 10mg을 조제했다는 이유로 약사가 기소된 사안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해당 재판부는 약사법상 처방 변경·수정 조제에 관한 처벌 규정은 고의로 처방을 변경한 경우에 적용된다고 판단했다. 즉 실수로 다른 의약품을 조제해 처방을 변경한 것과 같은 결과가 발생했다는 사정만으로 고의적인 처방 변경죄가 곧바로 성립하는 것은 아니라는 취지다. 다만 해당 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과 조제 실수에 대한 책임이 전혀 없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환자에게 피해가 발생했다면 민사상 손해배상책임이나 업무상과실치상 책임은 여전히 검토될 수 있다. 근무약사가 실수하면 약국장도 책임질까 근무약사가 업무 중 조제 실수를 한 경우 해당 근무약사의 책임뿐 아니라 고용주인 약국장의 책임도 문제가 된다. 민법상 사용자책임에 따라 종업원이 업무 수행 중 제3자에게 손해를 입히면 사용자가 함께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할 수 있다. 따라서 근무약사가 조제 과정에서 환자에게 손해를 입혔다면 약국장도 민사상 책임을 질 가능성이 있다. 약국장이 직접 조제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항상 책임을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약국의 인력 배치와 검수 체계, 근무약사에 대한 교육·감독, 고위험 의약품 관리 방식 등이 함께 검토될 수 있다. 형사책임은 개인의 과실을 원칙으로 하므로 근무약사의 실수가 곧바로 약국장의 형사책임으로 전환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약국장에게 별도의 관리·감독상 과실이 있었는지는 구체적인 사실관계에 따라 판단될 수 있다. 문전약국과 고위험 의약품은 이중 확인 필요 대학병원이나 종합병원 앞 문전약국은 항응고제, 항암제, 면역억제제 등 복용량 변화가 환자에게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의약품을 취급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약국에서는 조제 속도보다 검수의 정확성을 우선해야 한다. 유사한 명칭이나 포장을 가진 의약품은 보관 위치를 분리하고, 고위험 의약품은 별도의 표시와 이중 검수 절차를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조제자와 검수자를 가능하면 분리하고 환자 이름, 의약품명, 함량, 복용법을 최종 단계에서 다시 확인해야 한다. 오류를 발견했을 때의 대응 절차도 미리 정해둘 필요가 있다. 환자의 복용 여부를 신속히 확인하고 필요한 경우 처방 의료기관과 협의해 환자의 안전을 확보해야 한다. 처방전과 조제기록을 임의로 수정하거나 폐기해서는 안 되며 사고 발생 및 대응 과정도 객관적으로 기록해야 한다. 조제 실수 관련 자주 묻는 질문 -조제 실수가 발생하면 무조건 형사처벌을 받나. 그렇지 않다. 약사의 주의의무 위반과 환자의 상해, 조제 오류와 피해 사이의 인과관계 등이 확인돼야 한다.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다면 형사책임의 성립 여부도 달라질 수 있다. -근무약사가 배상하면 약국장은 책임이 없나. 근무약사가 업무 중 발생시킨 손해라면 약국장에게도 민법상 사용자책임이 인정될 수 있다. -실수로 다른 약을 조제하면 고의적인 처방 변경인가. 단순한 조제 착오와 고의적인 처방 변경은 구분된다. 다만 처방 변경죄가 성립하지 않더라도 민사책임이나 업무상과실에 따른 형사책임은 별도로 검토될 수 있다. 조제 실수는 환자의 생명·건강과 약국의 신뢰를 동시에 위협한다. 사고가 발생한 뒤 법적 책임을 다투는 것보다 인력 배치와 검수 절차, 고위험 의약품 관리체계를 사전에 정비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정확한 조제 시스템은 환자를 보호하는 장치이자 약사와 약국장을 보호하는 가장 현실적인 법적 안전망이다. 필자 약력 -영남대학교 약대 -부산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7기) -주식회사 셀트리온 -법무법인 그루제일 -법무법인(유한) 대륜 제약바이오헬스케어 센터장 -(현)법률사무소 리오 대표 변호사2026-07-01 06:00:45데일리팜 -
[기자의 눈] 창고형약국이 약사사회에 던진 진짜 '화두'[데일리팜=김지은 기자] 최근 몇 년 사이 약사사회의 가장 큰 화두를 꼽으라면 단연 창고형약국이다. 창고형약국 개설을 둘러싼 논란은 단순 새로운 형태의 약국이 등장했다는 데 그치지 않았다. 일반의약품 가격 경쟁과 난매, 소비자 신뢰, 약사의 전문성, 유통 질서까지 그동안 수면 아래 머물러 있던 여러 문제를 한꺼번에 끌어올렸다. 사실 이 같은 문제들이 하루아침에 생긴 것은 아니다. 일반의약품 가격 편차는 오래전부터 존재했고, 일부 품목을 중심으로 한 과도한 가격 경쟁도 꾸준히 이어져 왔다. 소비자들은 같은 의약품이라도 약국마다 큰 가격 차이를 경험했고 약사들 역시 가격 경쟁과 전문성 사이에서 고민을 반복해 왔다. 그럼에도 그동안 이 문제를 정면으로 논의하는 분위기는 크지 않았다. '시장에 맡길 문제'라는 시각과 '약국 자율권'이라는 인식이 공존했고 가격 문제는 민감한 사안이라는 이유로 공개적인 논의도 제한적이었다. 하지만 창고형약국은 그 균형을 흔들었다. 가격 경쟁이 어디까지 허용돼야 하는지, 일반의약품이 단순한 소비재와 같은 방식으로 판매되는 것이 적절한지, 약국의 역할은 어디까지여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 약사사회 안팎에서 본격적으로 제기되기 시작했다. 최근 대한약사회가 일반의약품 가격 질서와 유통구조 전반에 대한 연구에 착수한 것도 같은 흐름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일부 지역 약사회에서는 회원 의견을 수렴하며 가격 제도 개선 방향을 모색하고 있고 일반의약품 안전관리 강화 방안도 논의 테이블에 올랐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쉽게 꺼내기 어려웠던 주제들이다. 창고형약국은 결과적으로 약사사회가 외면해 왔던 숙제를 다시 펼쳐 보게 만든 셈이다. 물론 해답은 아직 없다. 정찰제가 정답인지, 자율가격제가 유지돼야 하는지, 일반의약품 유통구조를 어디까지 손봐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존재한다.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있다. 창고형약국을 둘러싼 논란을 단순히 일부 약국의 문제로만 바라본다면 결국 같은 논쟁은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지금 필요한 것은 특정 형태의 약국을 둘러싼 찬반을 넘어 일반의약품의 가치와 가격, 안전관리, 그리고 약국이 지켜야 할 공공성을 함께 고민하는 일이다. 창고형약국은 분명 약사사회에 적지 않은 혼란을 안겼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번 논란은 오랫동안 미뤄왔던 질문을 더 이상 피할 수 없게 만들었다. 창고형약국이 남긴 진짜 숙제는 한 형태의 약국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가 아니다. 앞으로 약국이 어떤 질서를 만들고, 일반의약품을 어떤 가치로 국민에게 전달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일일 것이다.2026-07-01 06:00:44김지은 기자 -
[기자의 눈] 상비약 확대, 숫자보다 중요한 안전망의 본질[데일리팜=강혜경 기자] 편의점 안전상비의약품 제도가 도입된 지 10년이 훌쩍 넘었지만, 품목 확대를 둘러싼 공방은 매년 도돌이표처럼 반복되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하반기 중점 추진 과제로 ▲편의점 안전상비의약품 품목 확대 ▲탈모 치료 건강보험 급여 확대 ▲비대면 진료 처방약 배송(재택수령) 확대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히면서 상비약 제도 논의가 도마 위에 올랐다. 약사단체는 오남용 우려와 무자격자에 의한 판매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반발하는 입장이지만 편의점 업계와 일부 소비자 단체는 지정 품목을 약사법상 최대치인 20개까지 늘려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포장단위를 줄여야 한다는 절충안까지 제시되고 있다. 여기에 한지아 국민의힘 의원의 '의사 처방 없이 살 수 있는 일반의약품은 9000개가 넘는데, 복지부는 여전히 안전상비의약품을 20개라는 숫자 안에 가두고 있다. 국민을 위한 기준인가, 아니면 이해관계에 묶인 기준인가. 복지부가 우선해야 할 것은 약사회의 눈치가 아니라 국민의 생명과 건강'이라고 일침을 가하며 드라이브를 걸었다. 한 의원이 제시한 주요 선행 국가들의 상비약 허용 품목 수는 미국 30만개, 영국 1500개, 일본 930개로, 약사법상 최대치인 20개까지 확대 된다고 해도 비교가 안 되는 수치다. 해외 사례와 비교할 때 접근성 부족 문제는 꼬리표처럼 계속해 따라 붙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소비자단체는 확대 품목군으로 지사제, 제산제, 알레르기 증상 완화제 등을 주장하고 있다. 소비자 수요가 높고 안정성 검토가 가능한 품목에 대해 품목 확대 논의를 우선 실시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지만, 판매자는 약학에 대한 일절 지식이 없는 일반인일 뿐이다. 그마저도 편의점주만 4시간 인터넷 교육을 받으면 돼 약을 판매하는 아르바이트생들은 단순 '캐셔'의 역할에 그치지 않는다. 약을 선택하고 약물에 대한 부작용까지 떠안아야 하는 주체가 모두 소비자가 되는 것이다. 이같은 논의를 지켜보면서 의아함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정부와 지자체가 지원하는 공공심야약국이 전국적으로 확충돼 운영되는 것은 물론 최근에는 365 의원·약국이 눈에 띄게 늘었기 때문이다. 야간 시간대나 주말, 공휴일에도 손쉽게 문 연 병원, 약국을 검색할 수 있다. 소비자들이 직접 카트를 끌고 다니며 약을 쇼핑할 수 있는 형태의 창고형·마트형 약국도 방방곡곡 생겨나며 확장되고 있다. 하지만 이같은 부분은 간과된 채 품목수 확대에 대한 논의에만 열을 올리는 부분은 아이러니라고 볼 수밖에 없다. 진정한 의약품 접근성은 단순히 편의점 매다 위에 더 많은 약을 올려놓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특히 약물 투약에 취약한 소아나 청소년, 다제약물을 복용하는 고령층에게 필요한 것은 더 쉽게 살 수 있는 약이 아니라, '내 상태에 맞게 조절애 줄 수 있는 전문가의 손길'이다. 소매 상권조차 붕괴해 편의점 조차 들어서지 못하는 진짜 의료취약지 주민들이 원하는 것 역시 편의점 상비약의 종류를 늘리는 것보다 대면이 가능한 보건의료기관과 전문가의 확충일 것이다. 국민의 편의성을 높이자는 주장은 언제나 그럴듯 해 보인다. 그러나 의약품은 편의성 보다 안전성이 우선돼야 하는 공공재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단순한 품목 수 확대를 두고 벌이는 소모적인 숫자 싸움이 아닌, 접근성을 보장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다. 공공심야약국처럼 전문가 관리 체계 내에서 접근성을 넓히는 방안이 없는지, 공공심야약국을 더 많은 이들이 이용하기 위한 대책은 무엇이 있는지 등을 고민하는 게 우선돼야 한다. 편리함이라는 달콤한 구호 뒤에 숨은 보건의료 안전망의 빈틈을 메우는 것이 국가와 정치권의 진정한 책무다.2026-06-30 06:00:42강혜경 기자 -
[데스크 시선] 이행명 회장이 남기고 있는 것[데일리팜=이석준 기자] 기업가는 무엇을 남겨야 할까. 누군가는 매출을 남기고, 누군가는 공장을 남긴다. 어떤 기업가는 시장 점유율과 브랜드를 남긴다. 하지만 대부분의 성과는 언젠가 새로운 기록에 자리를 내준다. 영원히 남는 것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명인제약 창업주 이행명 회장은 다른 답을 내놓은 듯하다. 그는 회사를 키우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기업이 사회로부터 성장의 기회를 얻었다면 언젠가는 그 결실을 다시 사회에 돌려줘야 한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 철학은 2023년 사재 350억원 출연이라는 결단으로 이어졌다. 현금 100억원, 명인제약 주식 250억원. 이행명 회장은 회사의 이름을 건 명인다문화장학재단을 설립했다. 하지만 진짜 의미는 출범 자체보다 그 이후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재단이 출범한 지 3년. 350억원으로 시작된 씨앗은 이제 500억원이 넘는 규모의 장학재단으로 성장했다. 누적 장학생은 473명, 누적 장학금 지원 규모는 13억2200만원에 이른다. 장학생 출신 국가는 중국, 베트남, 필리핀, 몽골, 우즈베키스탄 등 17개국으로 확대됐다. 최근 선발된 장학생 가운데는 의예과와 치의학과, 간호학과 진학생도 포함됐다. 누군가는 의사가 되고, 누군가는 간호사가 된다. 또 다른 누군가는 연구자가 되고 교사가 될 것이다. 그들의 출발점 가운데 하나에는 명인다문화장학재단이 있다. 이행명 회장이 주목한 대상이 다문화가정 자녀였다는 점은 의미가 작지 않다. 한국은 이미 다문화 사회로 접어들고 있다. 다문화 인구는 꾸준히 늘고 있고 학교 현장에서도 다문화 학생은 더 이상 낯선 존재가 아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아이들이 언어와 문화, 경제적 환경이라는 여러 장벽을 동시에 마주한다. 결국 이들이 어떤 교육 기회를 얻느냐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미래 경쟁력과도 연결된다. 그는 이런 아이들이 사회 구성원으로 당당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재단은 단순히 등록금을 지원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진로 상담과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학생들이 자신의 꿈을 구체화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명인다문화장학재단 홈페이지에는 다양한 장학생들의 이야기가 소개돼 있다. 의사를 꿈꾸는 학생, 사회복지사를 꿈꾸는 학생, 글로벌 무대에서 활동하는 전문가를 꿈꾸는 학생들까지 각자의 목표는 다르다. 하지만 공통점도 있다. 누군가 자신을 믿어주고 응원해줬다는 경험이다. 장학금의 가치는 단순히 통장에 입금되는 금액이 아니다. "너는 할 수 있다"는 사회의 응원일 수 있다. 그 응원이 한 사람의 삶을 바꾸고, 결국 사회를 바꾼다. 명인제약은 창립 40주년을 넘겼다. 회사는 국내 중추신경계(CNS) 치료제 시장을 대표하는 제약기업으로 성장했고 지난해에는 코스피 상장에도 성공했다. 하지만 이행명 회장이 남기고자 한 것은 다른 곳에 있는 듯하다. 매출과 공장, 주가와 시가총액은 시간이 지나면 달라질 수 있지만 사람에 대한 투자는 더 오래 남기 때문이다. 그가 설립한 장학재단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를 넘어선다. 한 기업인이 평생 일군 성과를 어떤 방식으로 사회와 나눌 것인가에 대한 고민의 결과물에 가깝다. 기업은 성장하고 변한다. 경영진이 바뀌고 시장 환경도 달라진다. 그러나 장학금을 받고 성장한 학생들이 의사와 연구자, 교사와 공무원이 되어 다시 사회를 움직인다면 그 영향력은 훨씬 오래 지속될 것이다. 좋은 약은 사람의 몸을 치료한다. 좋은 교육은 사람의 미래를 바꾼다. 이행명 회장이 350억원으로 시작한 선택은 어쩌면 새로운 약을 만드는 일과 닮아 있다. 효과가 나타나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그 효과는 생각보다 오래간다. 지금도 어딘가에서는 명인다문화장학재단의 도움을 받은 한 학생이 자신의 꿈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그것이 이행명 회장이 남기고 있는 가장 큰 유산인지도 모른다.2026-06-29 06:00:40이석준 기자 -
[기자의 눈] CSO협회 사단법인 가시화…자정으로 화답할 때[데일리팜=김진구 기자] 이재명 정부가 불법 리베이트 근절을 범정부 차원의 '국가 정상화 과제'로 지정하고 고강도 압박을 예고한 가운데, 보건복지부가 CSO협회의 사단법인 인가를 검토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그간 두 차례나 반려됐던 인가 신청을 복지부가 전향적으로 검토하기 시작한 것으로 풀이된다. 복지부의 태도 변화는 단순히 단체 하나를 공인해 주겠다는 의미가 아니다. 음지에서 불법 리베이트 우회로로 낙인찍혀 있던 CSO를 양지로 끌어올려, 제도권 내의 공식적인 대화 파트너로 인정하겠다는 일종의 '신분 상승' 신호탄이다. 4년간 임시조직에 머물렀던 CSO협회와 건강한 영업 생태계를 꿈꾸던 이들에게는 제도권 진입의 기회를 맞이한 셈이다. 정부가 양성화의 발판을 마련해 둔 셈이지만, 정작 일선 영업 현장에선 여전한 ‘수수료율 경쟁’이 펼쳐지고 있다. 정부가 CSO 실태조사에 착수하고, ‘수수료율 상한제’ 등을 검토하는 그 순간에도 수수료율 경쟁은 오히려 과열되는 양상이다. 최근 중견·중소 제약사 6~7곳은 특정 품목의 CSO 수수료율을 기존보다 5~20%p씩 줄줄이 인상했다. 일부 고혈압 복합제의 신규 처방 수수료율은 무려 75%까지 치솟았다. 1억원어치 약을 팔면 7500만원을 영업 대행사에 떼어주는 기형적인 구조다. 처방액만큼 수수료를 고스란히 얹어주는 ‘100:100(백대백) 프로모션’도 여전히 성행 중이다. 하반기 제네릭 약가 인하가 단행되기 전에 처방처를 선점하겠다는 제약사의 조바심과, 늘어난 규제 비용을 보전받으려는 CSO의 이해관계가 맞물린 결과다. 제도권 진입을 요구하면서 뒤로는 75%를 넘어 100%에 달하는 기형적인 수수료 베팅을 벌이는 업계의 이중성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매출 대부분을 영업 대행 수수료로 주고받는 구조를 방치한 채 "리베이트와 무관한 전문 영업 조직"이라는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현장의 이러한 과열 양상이 지속된다면 복지부의 법인 심의위원회를 통과하기는커녕, 정부가 검토 중인 '수수료율 상한제' 같은 강제적 규제에 명분만 더해줄 뿐이다. 규제는 시장이 자정 능력을 상실했을 때 비로소 개입한다. 정부가 '사단법인 인가 검토'라는 합법적 테두리와 양성화의 기회를 제공한 지금이야말로, CSO 업계가 스스로의 통제력과 가치를 증명할 마지막 골든타임이다. 올여름 새 회장 선출을 앞둔 CSO협회가 준비해야 할 것은 서류 보완만이 아니다. 회원사들을 단속해 공멸로 가는 고율 수수료 경쟁을 스스로 멈춰 세우고, 시장을 흐리는 불량 점조직들을 퇴출하는 실질적인 '자정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 CSO가 제도권으로 편입돼 당당한 제약산업 파트너로 거듭날 수 있을까. 아니면 눈앞의 이익에 매몰돼 음지의 리베이트 통로로 남을까. 정부는 문을 열어뒀다. 이제 그 문으로 당당히 걸어 들어갈 자격이 있음을 증명하는 것은 오롯이 CSO 업계의 몫이다.2026-06-26 06:00:46김진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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