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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네릭 약가, 14년을 관통한 하나의 질문45%, 그리고 14개 이상 유발 제품군에 적용되는 다품목 등재관리. 2026년 약가제도 개편안의 핵심이다. 얼핏 보면 전혀 새로운 제도처럼 보인다. 그런데 조문을 한 줄씩 짚어 내려가다 보면, 묘한 기시감이 든다. 어디선가 본 것 같은 느낌이다. 그 기시감은 착각이 아니다. 이번 개편은 새로운 규제가 아니라, 2012년부터 14년간 이어져 온 하나의 질문, "제네릭의 숫자와 가격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대한 세 번째 답이다. 두 번째 기고(다품목 등재관리, 왜 14번째인가)에서는 14라는 숫자가 어디서 왔는지, 그 경계선의 근거를 짚었다. 이번엔 그 경계선 자체가 14년 동안 어떤 자리를 옮겨왔는지, 그 이동의 방향을 따라가 본다. 2026년 개편이 정말 새로운 정책인지는, 14년 전으로 돌아가야 답할 수 있다. 1. 순서가 곧 가격이었던 시절 2012년 이전, 제네릭 시장에 몇 번째로 들어오는지는 곧 얼마를 받는지를 뜻했다. 최초등재 제품은 80%로 조정되고, 제네릭은 동일제제 여섯 번째까지 68%를 받았지만, 일곱 번째부터는 직전 최저가의 90%를 반복 적용하는 계단식이 작동했다. 이 계단에는 끝이 정해져 있지 않았다. 스무 번째쯤 되면 가격은 이미 10%대까지 내려가 있었다. 이 구조가 관리하려던 것은 단순했다. 시장 진입 순서 → 가격. 후발 진입을 가격으로 억제하는 방식이었고, 그 억제에는 사실상 하한선이 없었다. 2. 2012년, 정부는 계단을 없앴다 2012년 1월, 정부는 이 무한 계단식을 걷어내고 "동일성분 동일가" 원칙을 도입했다. 이제 제네릭은 몇 번째로 등재되든 순서와 상관없이 같은 53.55%를 받았다. 순서라는 변수가 완전히 사라진, 지금까지 네 시점 중 유일하게 평평한 구간이었다. 같은 시점, 1년간 가산 구간도 함께 설계됐고, 이어 같은 해 4월에는 기등재 의약품에 대한 일괄 인하도 시행됐다. 새 원칙을 신규 제품에만 적용한 것이 아니라, 이미 시장에 있던 제품까지 한 번에 새 기준으로 정리한 셈이다. 3. 2020년, 없앴던 순서가 돌아왔다 순서를 없앤다고 제네릭의 숫자가 줄지는 않았다. 2018년 발사르탄 성분 의약품에서 NDMA라는 불순물이 검출되면서, 정부는 제네릭 품질관리와 품목 수 관리를 하나의 문제로 묶어 다시 들여다봤다. 2020년 7월 시행된 개편은 자체 생동시험·등록 원료의약품 사용이라는 두 가지 품질 요건에 따라 가격을 요건별로 15%씩 차등했다. 등록 원료의약품 요건은 대부분 충족하는 만큼, 실제 차이는 생동에서 갈렸다. 두 요건을 모두 충족하면 53.55%, 자체 생동을 거치지 않은 품목은 45.52%(53.55%에서 15% 인하)다. 여기에 등재 순서에 따른 계단식도 다시 불러왔다. 다만 이번엔 순번이 20번째까지는 영향을 주지 않았다. 압박은 21번째부터 시작됐다. 이 요건 차등도 신규 제품에서 멈추지 않았다. 기등재 제네릭에도 같은 기준이 적용됐고, 생동을 새로 갖출 수 있도록 유예기간을 둔 뒤 2023년 9월 가격에 반영됐다. 답이 바뀐 지점이 여기다. 2012년의 답이 "순서와 상관없이 같은 가격"이었다면, 2020년의 답은 "같은 제네릭이라도 품질 요건과 진입 순서를 가격에 반영한다"에 가까웠다. 4. 2026년, 대부분은 낯설지 않다 2026년 8월 1일 시행된 개편만 놓고 보면 새로운 숫자가 많다. 기준선이 53.55%에서 45%로 낮아졌고, 요건 미충족 시 감액 폭이 15%에서 20%로 커졌으며, 계단식이 시작되는 지점도 21번째에서 14번째로 앞당겨졌다. 하지만 14년의 흐름 위에 올려놓으면, 이 변화들은 대부분 낯설지 않다. 기준선 45%만 해도, 2020년 자체 생동을 거치지 않은 품목이 받던 45.52%와 거의 같은 자리다. 기준가격을 낮추는 것도, 요건에 따라 차등하는 것도, 후발 순번에 계단식을 적용하는 것도, 새 기준을 기등재 제품까지 넓히는 것도 이미 2012년과 2020년에 있었던 정책 수단이다. 이번 개편의 상당 부분은 기존 기전의 강도를 조정한 것에 가깝다. 이번에도 45% 기준선과 요건 미충족 시 20% 감액은 기등재 제네릭에 연도별로 나눠 적용되지만, 결국 모두 같은 요율에 도달한다. 그런데 하나만은 다르다. 5. 이번에 처음 등장한 것 지금까지 산정규정 안에서 등재 이후 가격을 바꾼 것은 가산 종료처럼 내 제품의 조건이거나, 일괄 인하처럼 정책 자체의 변경이었다. 2026년 개편은 여기에 처음으로 타사의 동시 신청이라는 변수를 더했다. 그 변수를 담은 장치가 이번에 새로 도입된 다품목 등재관리다. 기등재 동일제제가 12개 이하였더라도, 같은 달에 여러 회사가 함께 신청해 기등재 품목과 신청 품목의 합이 14개 이상이 되면, 그 달 함께 신청한 품목들은 정해진 시점이 되면 15% 추가 인하된다. 별도의 사건도, 재심사도 없이. 다시 말해, 이제는 등재 순번만으로 앞으로의 가격을 가늠하기 어렵다. 같은 달 누가 함께 신청했는지까지 알아야 한다. 6. 21번째 품목이 보여주는 것 순번별로 실제 받는 가격을 계산해보면, 흥미로운 지점이 하나 나온다. 10번째 품목만 놓고 보면, 2012년 이후 세 시점의 차이는 기준선 조정(53.55%에서 45%) 정도에 그친다. 차이는 계단식이 시작되는 지점 이후에서 벌어진다. 21번째 품목이 받는 상한금액은 2012년 이전 14.00%에서, 계단을 없앤 2012년 1월에 53.55%로 올랐다. 2020년 7월에는 32.89%로 내려갔고, 2026년 8월 이후에는 7.85%다. 2012년, 정부가 없애기로 했던 것은 끝없이 이어지는 계단식 그 자체였다. 그런데 14년 뒤, 21번째 지점의 가격은 그때보다 오히려 더 낮은 자리에 와 있다. 계단을 없앴다가 다시 불러오고, 그 끝을 더 낮춘 이유는 무엇일까. 순번별 상한금액, 네 시점 비교 답이 겨냥한 대상은 계속 넓어졌다 그 이유는 네 시점을 나란히 놓고 볼 때 드러난다. 달라진 것은 정책이 바라보는 대상이다. 2012년에는 '가격'을 관리했다. 순서라는 변수를 없애 가격을 평평하게 만드는 일이었다. 2020년에는 여기에 '품질과 숫자'가 더해졌다. 어떤 제네릭에 같은 가격을 줄 것인지를 묻기 시작했다. 그리고 2026년에는, 함께 진입하는 동일제제의 품목수까지 가격에 연결하는 장치가 처음 도입됐다. 45%라는 기준선, 기등재 13개에 이른 뒤 들어오는 14번째부터 작동하는 계단식, 기등재와 동시 신청의 합이 14개에 이르면 작동하는 다품목 등재관리. 이 숫자들은 각각 독립된 결정이 아니다. 하나의 질문에 대한 답이 겨냥하는 대상을 조금씩 넓혀 오면서 나온 숫자들이다. 재원의 관점에서 본 제네릭과 신약 정부가 2026년 3월 건정심 의결과 함께 밝힌 설계는, 이 질문이 향해 온 방향을 읽는 단서가 된다. 약가 인하로 절감한 재원을 중증 환자의 부담 경감과 혁신 신약 보상에 쓰겠다는 구조다. 건강보험 재정이 한정돼 있다고 보면, 신약이 들어설 자리를 넓히는 일과 기존 약의 가격을 조정하는 일은 서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보면 앞서 본 숫자들이 다르게 읽힌다. 순번, 품질 요건, 13개라는 문턱은 제네릭 하나하나의 가격을 정하는 규칙이면서, 동시에 제네릭 전체가 차지하는 몫을 조정하는 규칙이기도 했다. 가격을 낮추는 일과 품목수를 관리하는 일은 서로 다른 정책이라기보다, 제네릭의 몫을 조정하는 두 가지 방법에 가깝다. 이 재원의 흐름을 약품비 전체의 관점에서 보면, 제네릭에서 줄어든 몫이 신약의 자리를 넓히는 구조로 읽힌다. 다만 첫 번째 기고(가중평균가의 역설)에서 봤듯, 같은 인하가 모든 신약에 같은 방향으로 작동하지는 않는다. 경제성평가를 거치는 혁신 신약에는 재원이 되지만, 가중평균가를 기준으로 삼는 비열등 신약에는 출발선을 낮춘다. 어느 쪽이든, 제네릭의 자리는 제네릭 안에서만 정해지지 않는다. 앞으로의 조건, 그리고 선택 제네릭의 가격은 비율로 정해진다. 비율로 정해진 가격은 비율 하나로 함께 움직여서, 한 번에 조정하기 쉽다. 특허가 끝나 다수의 동일제제가 경쟁하는 시장이라는 점도 있다. 재원의 여유가 줄어들 때 제네릭이 먼저 조정의 대상이 되기 쉬운 이유다. 14년 동안 계단의 모양은 여러 번 바뀌었지만, 제도의 기준점은 68%에서 53.55%, 다시 45%로 내려왔다. 그 방향은 늘 제네릭이 쓰는 재원의 몫을 줄이는 쪽이었다. 이 구조에서 제네릭의 수익은 가격이 지켜줄 수 있는 영역이 아니게 된다. 좋은 약을 만드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정해진 가격 안에서 그 약을 계속 만들어낼 수 있는지가 먼저 물어진다. 2020년 이후 품질이 경쟁의 조건이 되었다면, 이제는 채산성이 지속의 조건이 되어가고 있다. 이것을 누구의 잘못으로 볼 일은 아니다. 신약에 대한 보상을 넓히려면 재원이 필요하고, 한정된 재원 안에서 그 재원이 나올 수 있는 곳은 많지 않다. 다음 개편이 어떤 모양일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흐름은 이미 드러났다. 14년의 개편을 이어 읽고 나면, 앞으로의 조건이 지금보다 너그러워질 것이라고 기대할 근거는 찾기 어렵다. 이 흐름 안에서라면, 경쟁이 치열한 성분의 제네릭이 앞으로 어떤 가격에 놓일지는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다. 적어도 과거처럼 제네릭만으로 회사의 미래를 담보하던 구조는 약해지고 있다. 그렇다고 남은 길이 하나인 것은 아니다. 신약과 개량신약, 희귀의약품, 라이선스 전문, 위수탁 생산, 소품목 대량생산까지 선택지는 여러 갈래다. 특히 연구개발은 몇 년 단위의 제도적 보상보다 훨씬 긴 시간을 견뎌야 하는 어려운 선택인 만큼, 그 시간을 견딜 설계가 함께 필요하다. 남은 질문 기등재 제네릭의 단계적 약가 인하는 2033년, 혁신형·준혁신형 기업은 2036년에야 마무리된다. 이번 개편이 시장에 온전히 반영되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아 있다. 돌아보면 14년 동안 정책이 붙들어 온 질문은 하나였다. 제네릭의 숫자와 가격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답의 모습은 매번 달랐지만, 가격의 기준선을 낮추는 방향은 반복되어 왔다. 2026년 개편은 그 질문에 내놓은 또 하나의 답이다. 다만 한 가지 생각해볼 지점은 남는다. 가격을 낮추기에 앞서 필요한 지원책을 먼저 검토하고, 이를 꾸준히 보완하면서 조정이 필요한 부분을 하나씩 손보는 방법은 없었을까. 가격을 먼저 낮출 것인가, 시장을 먼저 살필 것인가. 그 순서가 조금 달랐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다. 그리고 이제는 제약사도 자신의 답을 내놓을 차례인지 모른다. 제네릭을 몇 개 더 등재할 것인가가 아니라, 앞으로 어떤 회사가 될 것인지, 그리고 어떤 회사로 남을 것인지. 어쩌면 그동안 미뤄왔던 선택일 것이다. 정책의 선택이 옳았는지는 시간이 지나야 알 수 있다. 제약사의 선택도 마찬가지다. 결국 두 선택의 결과는 달라질 시장과 산업의 모습 속에서 함께 확인될 것이다.2026-10-08 06:00:44박준섭 이사 -
급여기준 일반원칙 '제형'에도 걸려있다약가 실무에서 가장 먼저 확인하는 숫자는 상한금액이다. 이 숫자가 정해지면 그 약의 급여 문제가 끝난 것처럼 느껴지기 쉽다. 그런데 상한금액이 정해지는 것과, 그 가격에 건강보험이 실제로 비용을 지불하는 것은 별개의 절차다. 전자는 산정·조정·가산을 다루는 규정의 몫이고, 후자는 급여기준이라는 전혀 다른 규정의 몫이다. 이 급여기준을 벗어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그리고 급여기준이 구체적으로 어디까지 걸리는지 순서대로 짚어본다. 급여기준을 벗어나면 — 전액본인부담(100/100) 허가와 급여는 서로 다른 차원의 결정이다. 식약처 허가는 이 약이 안전하고 유효하다는 것을 확인하는 절차이고, 급여는 그중 어디까지를 건강보험 재정으로 지원할지를 별도로 정하는 결정이다. 국민건강보험법은 이 둘을 명확히 갈라놓는다. 이 조문 안에서 약제는 다른 여섯 가지 요양급여(진찰·검사, 처치·수술 등)와 다르게 취급된다. 일반 요양급여는 "제4항에 따라 비급여대상으로 정한 것을 제외한 일체"가 급여인 네거티브 리스트 방식이지만, 약제는 반대로 "제41조의3에 따라 요양급여대상으로 결정·고시된 것"만 급여가 되는 포지티브 리스트 방식이다. 성분·제품 단위로 개별적으로 결정·고시돼야만 급여가 된다는 뜻이고, 이 결정·고시 과정에서 투여대상, 세부인정범위 같은 급여기준이 함께 정해진다. 허가범위 안이라도 이 결정·고시된 범위 밖이면, 그 비용은 요양급여로 인정되지 않고 환자가 전액 부담한다. 이것이 흔히 말하는 100/100, 전액본인부담이다. 이 결정·고시 과정과는 별개로, 급여기준의 세부 적용기준과 방법은 같은 법 제41조제3항에 따라 국민건강보험 요양급여의 기준에 관한 규칙으로 위임되고, 그 중 요양급여규칙 제5조(요양급여의 적용기준 및 방법)가 구체적인 적용기준과 방법을 정한다. 정제·캡슐제·시럽제처럼 제형에 따라 급여 여부가 갈리는 지점은 결국 이 요양급여규칙 제5조에서 시작되는 세부기준(즉 급여기준)에서 결정된다. 참고로 제4항의 "비급여대상"은 앞서 본 급여기준(요양급여규칙 제5조)과는 또 다른 갈래로, 애초에 급여체계 밖에 있는 항목을 가리킨다(국민건강보험 요양급여의 기준에 관한 규칙 제9조에 비급여대상으로 별도 지정되어 있음). 여기서 한 가지는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 100/100은 비급여와 다르다. 비급여는 애초에 급여체계 밖에 있어 가격 자체가 시장에서 정해진다. 반면 100/100은 급여 목록 안에 있으면서, 이미 고시된 상한금액을 환자가 그대로 전액 부담하는 것이다. 결과는 "환자가 다 낸다"는 점에서 같아 보이지만, 시스템 안에서의 위치는 정반대다. 일반원칙은 계열형만 있는 게 아니다 급여기준은 다시 두 갈래로 나뉜다. 특정 성분 하나에만 붙는 개별약제 기준과, 여러 성분·제품에 공통으로 적용되는 일반원칙이다. 일반원칙이라고 하면 흔히 당뇨병용제처럼 계열 전체에 걸리는 병용 규칙을 떠올리기 쉽다. 그런데 실제 일반원칙이 걸리는 축은 그보다 다양하다. 이렇게 보면 일반원칙이 걸리는 축은 계열·가격대·함량·제형 등으로 다양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번 글에서 짚어볼 것은 그중 제형에 걸리는 경우다. 제형에 걸리는 급여기준 — 내용액제 일반원칙 "내용액제 일반원칙"이 그런 경우다. 시럽제·현탁액 같은 내용액제는 같은 성분의 정제나 캡슐제가 이미 존재한다면, 특정 조건을 충족하지 않는 한 급여가 인정되지 않는다. 이 원칙은 2011년 10월부터(보건복지부 고시 제2011-74호) 시행돼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성인 환자가 정제를 삼키는 데 문제가 없다면, 같은 성분의 시럽제를 처방받아도 앞서 본 100/100이 그대로 적용된다는 뜻이다. 제산제와 Sucralfate 제제만 제형 특성을 감안해 예외로 인정된다. 이 원칙이 걸리는 대상은 특정 회사의 특정 제품이 아니라 내용액제라는 제형 그 자체다. 어떤 회사가 만들든, 어떤 성분이든, 동일성분의 정제·캡슐제가 존재하는 순간 이 규정 안으로 들어온다. 개별고시로 예외가 인정되는 경우도 있다 다만 이 일반원칙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앞서 본 규정원문에도 "개별 고시가 있는 내용액제는 해당 고시 기준을 따름"이라는 단서가 붙어 있다. 특정 제품에 대해 별도 고시가 나면, 그 개별고시가 일반원칙보다 우선한다. 알렌드론산나트륨(Sodium alendronate) 시럽제가 그런 사례다. 그 결과 알렌드론산나트륨 시럽제는 내용액제 일반원칙의 "만 12세 미만", "연하곤란" 같은 연령·상태 제한을 적용받지 않는다. 대신 같은 성분의 정제와 마찬가지로 골다공증치료제 일반원칙의 세부사항 범위 안에서 급여를 인정받는다. 정제 복용 시 요구되는 공복·기립자세 유지 부담을 줄여 복용 순응도를 유의하게 높인다는 임상적 근거가 인정되면서, 제형에 걸리는 일반원칙 대신 계열형 일반원칙을 따르도록 개별고시로 예외가 열린 경우다. 약제를 검토할 때 상한금액이 얼마인지는 산정규정이 답해준다. 그런데 그 가격에 실제로 처방될 수 있는지는 전혀 다른 규정, 급여기준이 답한다. 이번 글에서 본 것처럼 급여기준은 개별약제 기준과 일반원칙으로 나뉘고, 일반원칙 안에서도 계열·가격대·함량·제형 등 서로 다른 축이 존재한다. 그중 제형에 걸리는 일반원칙은 특정 제품이 아니라 제형 자체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어떤 회사가 어떤 성분으로 그 제형을 택하든 예외 없이 적용된다. 다만 앞서 본 알렌드론산나트륨 시럽제 사례처럼, 임상적 필요가 인정되면 개별고시를 통해 다른 규정을 따르도록 예외가 열릴 여지도 있다. 결국 하나의 약제를 온전히 평가하려면 산정약가와 급여기준을 같은 무게로 함께 봐야 한다. 얼마를 받을 수 있는지와, 그 가격에 실제로 쓰일 수 있는지는 서로 다른 질문이고, 둘 중 하나만 확인해서는 그 약제의 실제 가치를 판단했다고 보기 어렵다. 내용액제처럼 이미 자리잡은 제형 일반원칙도 있지만, 이 목록이 고정된 것은 아니다. 특정 제형이 임상 현장에서 새롭게 자리를 넓혀갈 때, 그 제형에 급여기준이 새로 걸리는 것도 시간문제일 뿐이다.2026-09-18 06:00:38박준섭 이사 -
"약가 45%는 시작일뿐..." 미래 수익 가를 4가지 질문1부 · 신약등재 — 산정약가 기준점의 탄생 약가 산정이라고 하면 보통 계산기를 두드리는 장면을 떠올린다. 틀린 생각은 아니다. 실제로 산정규정, 그 안 어디에도 "이 약의 진짜 가치는 얼마다"라고 새로 계산해내는 조항은 없다. 있는 건 전부 하나의 질문뿐이다. 이미 정해져 있는 기준점에서, 이번 품목의 약가는 어떤 규칙으로 어느 위치에 놓이는가. 이 질문에 답하려면, 먼저 기준점이 무엇이고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부터 알아야 한다. 기준점은 계산이 아니라 절차적 합의로 만들어진다 어떤 성분이 국내에 처음 등재되는 순간을 떠올려보자. 이 신약은 심평원(HIRA) 신약등재 신청과 실무 검토, 약제급여평가위원회(약평위) 심의를 거쳐 건보공단(NHIS)과의 약가협상 테이블에 오른다. 협상이 끝나면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 심의와 보건복지부 고시를 거쳐 비로소 급여 목록에 이름을 올린다. 이 절차의 끝에서 나오는 숫자(그 성분의 최초등재가)는 어느 한 기관이 계산기로 뽑아낸 값이 아니다. 임상적 근거를 심사하고, 경제성을 검토하고, 재정 영향을 협상한 결과로 여러 주체가 "이 가격이면 급여로 받아들이겠다"고 동의한 숫자다. 계산이 아니라 절차적 합의다. 이 숫자를 100이라고 하자. 이 100은 등재된 순간부터 그 성분의 좌표가 된다. 이후 사용량-약가연동협상, 사용범위 확대에 따른 조정, 실거래가 조사에 따른 조정 같은 사후관리를 거치며 100은 조금씩 내려앉을 수 있다. 이때 사후관리로 줄어드는 값을 A라 하면, 그 결과값은 100-A가 되고, 이 값이 바로 산정의 출발점이 되는 값이 되는 것이다. 그 기준점에서, 질문 하나가 경로를 가른다 이 성분으로 새로운 의약품을 또 만든다고 해보자. 여기서 산정규정이 실제로 던지는 질문은 딱 하나다. 동일제제가 있는가? 없는가? 성분·염·함량·제형이 모두 최초등재제품과 같은 제품이 이미 있다면, 이 신청품은 동일제제 트랙을 탄다(산정규정 제2호가목). 반대로 염이나 제형이 다르거나, 용법용량이 개선됐거나, 함량이 다르거나, 이 성분을 포함한 복합제라면 산정규정 제2호나목인, 동일제제가 없는 경우의 트랙을 탄다. 같은 기준점 100 또는 100-A에서 출발했더라도, 이 갈림길에서 이미 다른 숫자를 향해 가고 있는 것이다. 이 갈림길은 다시 여러 갈래로 뻗는다. 가목(동일제제 있음)을 탄 유형은 45%에서 산정되고, 나목(동일제제 없음)을 탄 자료제출의약품은 변경 내용(염·제형, 용법용량, 함량, 복합제 여부)과 개발목표제품의 동일제제 등재 여부에 따라 90% 또는 45%, 100% 또는 49.5%에 자리를 잡는다(산정규정 별첨1 기준 적용). 같은 100에서 출발해도, 규정상 어디에 서느냐에 따라 숫자는 갈라진다. 여기서 확인할 수 있는 건 숫자 몇 개가 아니다. 산정이라는 행위의 정체다. 산정은 매번 새로 계산해내는 창작이 아니라, 이미 사회적으로 합의된 기준점 위에서 이번 산정 품목이 어떻게 계산되는지를 규정에 대입해 숫자를 도출해 내는 일이다. 그런데 실제 업무에서는 이 해석이 숫자 하나에서 멈춘다. 동일제제가 있는지 확인하고, 요건을 대입해 45%를 얻으면 산정이 끝났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숫자는 이 품목의 가격을 설명하는 전부일까? 이제 이 질문을, 우리가 평소 익숙하게 쓰는 감각으로 바꿔보자. 2부 · 산정규정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 우리는 매일 네 개의 축을 동시에 돌리며 산다. 그것도 아주 자연스럽게. 오늘 저녁 7시, 강남에서 약속이 있다. 지금은 6시 20분, 나는 여의도에 있다. 무의식중에 머릿속에서 계산이 시작된다. 지하철역까지 걸어서 5분. 2호선을 타면 강남까지 30분. 충분하다. 아무도 이걸 '네 개의 축을 계산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생활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짧은 판단 안에는 이미 네 개의 질문이 동시에 작동하고 있었다. 같은 경로도 오전 11시라면 택시가 빠르다. 금요일 저녁이라면 지하철도 만원이다. 언제냐가 나머지 세 질문의 답을 다시 흔든다. 이걸 '4차원 분석'이라 부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냥 일상이다. 우리는 이미 매일, 자연스럽게 이 네 질문을 동시에 굴리며 살고 있으니까. (여기서 4차원은 물리학적 정의와 정확히 일치하지 않지만, 약가를 바라보는 네 개의 축을 설명하기 위한 하나의 비유다.) 이제 다시 약가 이야기로 돌아오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래 질문의 끝에서 멈춘다. 끝이다. 숫자 하나가 나왔으니까. 그게 약가니까. 그런데 정말 끝일까? 지하철 기본요금 1,550원이 최종 비용이 아니듯, 45%도 계산의 끝이 아니다. 아직 X·Y까지만 반영된 중간값일 뿐이다. 여기서부터 네 축을 세워보자. 1부에서 본 100은 이 좌표계의 원점(origin)이다. X·Y·Z·T는 그 원점 위에서 이번 품목이 어디에 서 있는지를 재는 네 가지 질문이다. 이렇게 나누면 축이 서로 겹치지 않는다. X는 오직 "무엇"만 답하고, Y는 오직 "어떤 규칙"만 답한다. 회사 유형이나 생동 요건을 X에 두면, 품목의 정체성과 산정규칙이 뒤섞여버린다. 그 둘을 분리하는 순간 규정이 훨씬 깨끗하게 읽힌다. 네 축은 동시에 작동하지만, 우리가 약가를 바라보는 시야는 하나씩 넓혀볼 수 있다. 이 네 축을 한 문장씩 다시 정리해보면 이렇다. 단계가 올라갈수록 질문의 수준이 올라간다. 등재 직후의 45%와, 가산이 붙은 60%와, 가산 종료 후의 45%, 다품목 유발로 인한 38.25%, 이 넷은 다른 품목이 아니다. 같은 품목이 시간과 환경에 따라 그려낸 서로 다른 순간들이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우리의 삶은 매일 이 네 개의 축을 두고 고민하며, 가장 나은 방향을 찾아간다.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지금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배우고, 그 선택이 다시 다음의 선택을 만든다. 그게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이다. 그런데 유독 약가 업무를 할 때만, 이 감각이 사라진다. 일상에서는 과거의 흐름도 살피고 앞으로 달라질 상황도 예상하면서 움직이는데, 약가 앞에서는 곧장 무엇(X)과 어떻게(Y)로만 들어간다. 이 품목이 무엇인지, 지금 얼마인지. 그것만 확인하고 멈춘다. 그 45%가 한번 정해지면 영원히 변하지 않을 숫자처럼, 그 뒤 어떤 상황에서 언제 약가가 다시 움직이는지는 확인하지 않은 채로. 제약산업에서 약가는 곧 미래의 수익이다. 시작할 때의 숫자만 알고 그 뒤를 모르면, 지금 세우는 손익 계산은 처음부터 틀린 그림이 된다. 지금의 약가가 어떤 기준점에서 왔고,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움직이며, 앞으로 어디로 향할지 읽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것이 약가 담당자의 진짜 역할이다. 약가 산정을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규정에서 숫자를 찾았으면, 그 숫자가 어떤 기준점에서 왔는지, 그리고 언제까지 유효한지 확인해봐." "약가는 하나의 숫자가 아니다. 합의된 기준점(100) 위에서, 품목(X)이 규칙(Y)과 환경(Z) 아래, 시간(T)을 따라 그리는 하나의 경로다."2026-09-04 06:00:44박준섭 이사 -
PVA 협상 약제, 약가인하율은 언제·어떻게 결정될까?약가 담당자의 개인 캘린더에는 남들과 다른 표시가 하나 있다. 6월, 사용량-약가 연동협상(이하 PVA) 시즌의 시작이다. 이 시즌은 여름 내내 이어지다 9월 1일, 약가인하 고시로 마무리된다. 이 계절을 맞이하는 방식은 회사마다 다르다. 어떤 회사에게는 연례행사고, 어떤 회사에게는 몇 년에 한 번 찾아오는 일이고, 또 어떤 회사에게는 올해가 처음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연례행사인 회사조차 이 시즌을 가볍게 넘기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왜일까. 이 협상의 본질이 '깎으려는 쪽'과 '덜 깎이려는 쪽'이 매번 새로 협의점을 찾아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익숙해진다고 쉬워지는 종류의 일이 아니다. 처음 겪는 회사는 사정이 더 복잡하다. 절차 자체가 낯선 데다, 회사 전체가 상당한 인력과 시간을 쏟아붓고 나서도 이게 잘 대응한 결과인지 아닌지 판단할 기준조차 없다. 그래서 이 협상이 정확히 어떤 제도이고, 어떤 절차를 거쳐,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지를 미리 알고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다. 유형 가·나·다, 그리고 이 글이 다루는 것 PVA는 약제의 등재 방식과 협상 이력에 따라 세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매년 9월 1일의 풍경을 만드는 것은 이 중 대부분 유형 '다'다. 예를 들어 2026년을 기준으로 하면, 2024년 청구액과 2025년 청구액을 비교해 2026년 6월 협상 대상이 지정되고, 60일간의 협상을 거쳐 9월 1일 자로 약가인하가 적용되는 흐름이다. 이 글은 이 중에서도 유형 '다', 즉 산정으로 등재된 제품이 겪는 협상을 중심으로 다룬다. 국내 제약사가 보유한 품목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유형이기도 하다. 대상이 된다는 것의 의미 협상 대상이 됐다는 건 그만큼 청구액이 크게 늘었다는 뜻이니, 그 자체로는 반가운 소식이다. 다만 그 성장이 그대로 인하 압력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이 제도는 좋은 성과에 아쉬운 결과가 뒤따르는 구조이기도 하다. 협상대상 품목 여부는 이미 그 전 해에 정해져 있었다 유형 '다'의 기준일은 등재 익년 1월 1일이고, 비교기간과 분석대상기간 모두 달력 연도, 즉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의 청구액을 기준으로 삼는다. 일반화하면, 협상과 시행이 이뤄지는 해를 N년이라 할 때 비교기간은 N-2년(전전년도), 분석대상기간은 N-1년(전년도), 그리고 통보·협상·시행은 N년(6월~9월) 안에서 이뤄진다. 예를 들어 2026년 9월 1일 자로 조정되는 유형 '다' 품목이라면, 비교기간은 2024년(1월~12월), 분석대상기간은 2025년(1월~12월)이다. 즉 2026년 9월의 인하 여부와 폭은 이미 2025년 안에서 갈린 셈이다. 비교 대상이 되는 전년도(2024년) 청구액은 이미 고정돼 있고, 분석대상기간(2025년) 청구액은 그 해 내내 쌓여가는 숫자였다. 그래서 대상 여부는 반드시 2025년 12월 31일이 되어야만 드러나는 게 아니다. 성장 속도가 뚜렷하다면, 그해 여름이 끝나기도 전에 이미 기준 초과가 확실해지는 경우도 있다. 대상이 이미 선정되어 있다고 해도 협상이 형식적인 것은 아니다. 확정되는 건 대상 여부와 청구액 증가율뿐, 실제 협상은 그 위에서 벌어지는 별개의 과정이다. 협상참고산식이 계산해낸 숫자를 두고, 공단은 그 숫자대로 혹은 그보다 더 깎으려 하고, 회사는 그 숫자보다 덜 깎이려 한다. 매해 다른 품목, 다른 시장 상황 위에서 같은 줄다리기를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 담당자 개인이 경험을 쌓는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 조직 차원의 대응 체계가 갖춰져 있는지가 관건이라는 뜻이다. 협상은 매출이 쌓이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협상 대상 판단 기준은 단순하다. 비교기간 대비 분석대상기간 청구액이 60% 이상 늘거나, 10% 이상 늘면서 그 증가액이 50억 원을 넘으면 협상 대상이 된다. 이 기준선은 매출 규모에 따라 실제 금액으로 환산할 수 있다. 매출 규모가 커질수록 60% 기준보다 10%·50억 기준이 먼저 도달하는 지점이 낮아진다. 이 두 기준이 정확히 맞바뀌는 교차점은 비교기간 청구액 약 83.3억 원이다. 60% 성장액(0.6×83.3억)과 10%·50억 조건의 하한선(50억)이 정확히 같아지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이보다 매출이 작은 품목은 60% 기준이 먼저 걸리고, 이보다 크면 10%·50억 기준이 먼저 걸린다. 83.3억 원 부근의 매출을 가진 품목이라면, 아주 근소한 성장률 차이로도 적용받는 기준 자체가 바뀔 수 있다는 뜻이다. 이 구간에 있는 품목일수록 성장 곡선을 더 촘촘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이 문턱을 넘을지 여부는 자사의 매출 추이만 있으면 사전에 계산할 수 있다. 협상대상 제외기준(연간 청구액 30억 미만, 산술평균가의 90% 미만 등) 역시 조문에 명시되어 있어, 미리 검토해둘 수 있다. 협상은 공문을 받은 순간 시작되는 게 아니라, 매출 데이터가 쌓이는 매달 이미 시작되고 있는 셈이다. 기준점은 있지만, 정답은 없다 협상참고산식은 협상의 기준점을 만들 뿐이다. 그 기준점에서 얼마나 더 조정할 수 있는지는, 협상이 열릴 때마다 새로 판단해야 하는 영역이다. 문제는 이 판단에 참고할 잣대가 마땅치 않다는 데 있다. 보정 규정이 마련돼 있다 해도, 결국 그 안에서 공단과 협의해야 하는 구조 자체는 달라지지 않는다. 아무리 논리적으로 아쉬운 지점이 있어도, 결과는 정해진 정답이 아니라 그때그때의 협의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이번 협상이 잘 방어된 것인지 가늠하려면 '다르게 대응했다면 어땠을까'라는, 애초에 알 수 없는 비교값이 필요하다. 그래서 이 협상을 준비하는 회사가 실제로 할 수 있는 일은, 산식 안에서 어디까지가 계산으로 이미 정해진 몫이고 어디부터가 협상의 여지인지를 먼저 구분해내는 일에 가깝다. 다만 그 구분이 분명해진다고 해서 결과를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애매함 자체가, 협상을 준비하는 회사가 매해 다시 감당해야 하는 부담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협상참고산식의 구조 유형 '다'의 협상참고가격은 다음 산식으로 산정된다. 이 산식이 협상의 출발점이 되는 숫자를 만든다. 다만 이 산식만으로 결과가 끝나는 건 아니다. 뒤에서 다룰 가격 포지션(가중평균가 대비 고가·저가 여부)이 이 출발점 위에서 또 한 번 작용한다. 계수(X), 유형에 따라 다르게 적용된다 계수 X는 청구액 규모에 따라 네 단계(0.95~0.80)로 나뉘는데, 이 단계가 유형 '가'와 유형 '나·다'에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한 칸씩 밀려서 적용된다는 점이 실무에서 종종 놓치는 부분이다. 유형 '다'만 놓고 보면, 규모가 클수록 낮은 계수(더 큰 Ⓑ 비중)가 적용된다는 기본 원칙은 동일하다. 계수가 같아도, 증가율이 인하폭을 가른다 계수만 보면 청구액 규모가 클수록 Ⓑ의 비중이 커지니 더 많이 깎일 것 같다. 그런데 실제 인하율을 청구액 증가율별로 계산해보면, 인하폭을 좌우하는 또 하나의 변수가 드러난다. 바로 증가율이다. 계수가 같더라도 증가율에 따라 인하폭은 크게 달라진다. 아래는 유형 '다'에 실제로 적용되는 세 계수(0.90 / 0.85 / 0.80) 기준이다. 같은 청구액 증가율(60%)에서 세 계수의 인하율이 얼마나 벌어지는지를 보면 계수의 무게가 뚜렷하게 드러난다. 30억~50억 구간(X=0.90)은 3.75%, 50억~300억 구간(X=0.85)은 5.63%, 300억 이상 구간(X=0.80)은 7.50%. 같은 성장률이라도 매출 규모(=적용 계수)에 따라 인하율이 두 배 가까이 벌어진다. 이렇게 보면, '10%·50억 원' 기준으로 걸리는 경우와 '60% 성장' 기준으로 걸리는 경우는 같은 '대상 편입'이라도 체감되는 인하폭이 다를 수밖에 없다. 매출이 완만하게 늘어 10%·50억 기준에 걸린 품목보다, 가파르게 늘어 60% 기준에 걸린 품목의 인하폭이 산식 구조상 더 크다. 협상 테이블에 앉기 전, 자사 품목이 어느 기준으로 대상이 됐는지를 파악하는 일이 곧 그 시즌의 난이도를 가늠하는 일이 된다. 가중평균가 위에 있는가, 아래에 있는가 협상참고산식은 계수와 청구액 증가율만으로 결과가 정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협상에서는 산식 밖의 변수가 결과에 영향을 준다. 대표적인 것이 협상참고가격의 보정이다. 규정은 협상 대상 약제의 청구액 증가가 보험재정에 미친 영향, 대체제를 포함한 시장 전체의 가중평균가에 미친 영향 등을 비교해 협상참고가격을 보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 보정 구조 때문에, 자사 제품이 동일 성분·동일 치료군의 가중평균가보다 높은 가격대에 있는지, 낮은 가격대에 있는지가 협상의 양상에 영향을 준다. 이 방향성이 규정에 고정 공식으로 명시된 것은 아니지만, 실무 협상에서는 이런 흐름이 반복적으로 관측된다. 일반적으로 가중평균가보다 비싼 제품은 협상 테이블에서 산식 대비 추가적인 인하 압박을 받을 가능성이 높은 포지션에 서게 되고, 가중평균가 이하 제품은 보정 조항을 통해 인하율을 완화받을 여지가 상대적으로 크다. 즉 협상참고산식은 협상의 출발점이지 종착점이 아니다. 우리 제품이 시장에서 어떤 가격 포지션에 있는지를 미리 파악해두는 일이, 산식이 제시하는 숫자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를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된다. 매출목표를 세우는 순간, 이미 알 수 있는 것들 지금까지 짚은 내용을 실무에 그대로 옮기면, 결론은 하나로 모인다. 매출목표가 세워지는 순간, 그 목표 안에는 이미 다음 PVA의 가능성도 함께 들어 있다. 그 목표치를 협상참고산식에 대입해보면 대략적인 인하율까지 미리 가늠해볼 수 있다. 여기에 앞서 본 가격 포지션도 함께 봐야 한다. 자사 제품이 동일 치료군의 대체제보다 고가라면, 방어는 산식이 제시하는 숫자보다 더 어려워지는 것이 일반적인 흐름이다. 예를 들어 작년에 100억 원을 팔았다면, 올해 150억 원을 넘기는 순간 10%·50억 기준으로 대상이 된다(100억 원의 60% 기준은 160억 원이지만, 그보다 앞서 150억 원에서 10%·50억 기준이 먼저 걸린다). 만약 올해 매출목표가 200억 원이라면, 이 품목은 목표를 달성하는 순간 무조건 협상 대상이 된다는 뜻이다. 그것도 앞서 본 인하율 표에서 상당히 높은 구간에 해당하는 폭으로. 협상 자체를 잘 이끄는 일은 분석과 설득의 영역이다. 하지만 그 협상을 시작하기 전에 결과를 미리 예측해 공유해뒀는지는, 분석이나 설득과는 다른 준비의 영역이다. 이 차이는 협상 테이블에서의 대응 방식뿐 아니라, 최종 인하율을 조직이 얼마나 받아들일 수 있는지에도 영향을 준다. 제도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한 상태에서 갑작스레 맞이하는 인하와, 산식상 이미 5% 안팎이 깎인다는 걸 알고 협상에 들어가 그 결과를 협상으로 얼마나 완화했는지를 확인하는 것은, 조직 내부에서 그 결과를 받아들이는 정도부터 다르다. 미리 알고, 같은 방향으로 대응한다 이 제도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이미 정해진 규칙 위에서 매해 반복되는 절차다. 그렇다면 대상 여부와 대략적인 인하율은 협상 시즌이 오기 전에 미리 계산해, 조직 내부에서 먼저 협의해두는 것이 맞다. 그래야 이 제도를 받아들이는 태도 자체가 달라지고, 실제 협상 테이블에서도 회사 전체가 같은 방향으로 대응할 수 있다.2026-08-27 06:00:42박준섭 이사 -
"제약 정책 3개의 레이어...권한을 알아야 문이 열린다"장면 1 혁신형제약기업 인증 요건 중 R&D 투자 비율을 조정해야 한다는 건의서를 준비했다. 논리는 탄탄했고, 같은 문제의식을 가진 회사도 여럿이었다. 마침 혁신형 신규 지정을 앞둔 시점이어서, 이번 인증 주기 안에만 반영되면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돌아온 답은 이랬다. "검토는 해보겠지만, 당장 반영은 어렵습니다." 명분이 분명해 보였던 그 사안은, 나중에 알고 보니 대통령령에 담긴 숫자였다. 대통령령의 개정은 국무회의를 거친다. 몇 달이면 끝날 거라 생각했던 일은, 처음부터 최소 수년을 각오해야 하는 사안이었다. 장면 2 염변경 제품의 단·복합제를 같은 시점에 등재해달라고 요청한 적이 있다. 산정 규정상 두 제품 사이에는 한 달의 시차를 두도록 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심평원 담당자를 설득하면 풀릴 문제라고 생각했다. 담당자도 취지에는 충분히 공감했다. "저희도 필요성은 알겠는데, 저희 선에서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니라서요." 명분은 충분히 납득이 가지만, 현행 규정상 동시 등재를 허용하는 근거 자체가 없다는 게 결론이었다. 근거를 새로 만드는 일이 아니라, 기존 규정을 이 사안에 어떻게 적용할지에 대한 유권해석이 먼저 필요했고, 그 해석은 심평원이 아니라 복지부의 몫이었다. 그제서야 방향을 바꿔, 몇 달에 걸쳐 복지부를 설득하고 협의를 이어나간 끝에 유권해석을 통해 적용 가능성을 인정받을 수 있었고, 이후 절차에 따라 심의기구를 거쳐 최종적으로 동시 등재가 확정됐다. 장면 3 신약이 약평위를 통과한 후 공단과 약가·예상청구량 협상에 들어간 적이 있다. 심평원의 평가 금액이 기대보다 낮았고, 처음에는 공단과의 협상 과정에서 그 격차를 어느 정도 메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협상 테이블에서 이 논리는 통하지 않았다. 심평원은 임상적 유용성과 비용효과성 등을 바탕으로 급여 적정성과 평가금액을 검토하고, 공단은 이를 토대로 제약사와 가격·예상청구액 등 보험재정과 관련된 사항을 협상한다. 서로 다른 질문에 답하는 곳이라, 한쪽에서 아쉬웠던 부분을 다른 쪽에서 보정해줄 방법은 애초에 없었다. 협상에서 의견을 개진해볼 수는 있었지만, 그 이상의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한국 제약산업 정책의 3개 레이어 세 장면 모두,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어디를 두드렸어야 했는지가 보였다. 그 뒤늦은 깨달음을 미리 얻을 방법은 없을까. 답은 매번 다르게 느껴졌던 이 상황들이 사실 하나의 구조 위에서 반복되고 있었다는 데 있다. 제약산업 정책 이슈는 분야가 달라 보여도 하나의 공통된 구조 위에서 작동한다. 크게 3개의 레이어로 나뉘고, 레이어마다 결정이 내려지는 방식과 절차, 걸리는 시간이 다르다. 같은 "어렵습니다"도 어느 레이어에서 나왔느냐에 따라, 그걸 풀기 위한 시간과 절차, 접근 방법이 완전히 달라진다. 참고로 여기서 '레이어'라는 표현은 법적 위계를 나타내는 공식 용어는 아니다. "누가 어떤 수준의 결정을 할 수 있는가"를 실무자가 빠르게 판단할 수 있도록, 이 글에서 편의상 나눈 구분이다. 핵심 포인트 레이어 1만 봐서는 약가 산정 숫자나 급여 기준 공식이 나오지 않는다. 그 공식은 레이어 2에 있다. 레이어 2를 숙지해도 협상 테이블에서 왜 그런 기준이 적용되는지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그 판단 기준은 레이어 3의 해석에 있다. 그리고 레이어 3의 해석 범위 안에서 풀 수 있는 문제를 레이어 1 개정으로 풀어야 한다고 착각하면, 애초에 필요하지도 않았던 수년 단위의 과제를 스스로 만드는 셈이다. 레이어는 곧 판단의 지도다 레이어가 다르면 그 문제를 바꾸는 데 필요한 절차와 시간도 함께 달라진다. 아래 표는 레이어별로 결정이 내려지는 단위와, 그에 따르는 절차·소요 시간을 일반적인 경우를 기준으로 대략 추정한 것이다. 사안의 성격이나 시점에 따라 실제 소요 시간은 달라질 수 있다. 참고 사례 산정률 45%로 인하하는 내용을 포함한 이번 약가제도 개편안의 경우, 2025년 11월 28일 발표 후 시행(2026.8.1)까지 약 8개월이 걸렸다. 이는 방향이 정해진 이후 절차에 소요된 기간일 뿐이다. 착수와 협의를 거쳐 안이 확정되기까지의 준비 기간까지 포함하면, 전체 소요 시간은 이보다 길어진다. 자주 생기는 착시 레이어 3은 기관별로 소관이 명확하게 나뉜다. 앞서 본 장면처럼 심평원과 공단은 서로 다른 질문에 답하는 기관이지, 한쪽이 다른 쪽의 결정을 다시 검토해주는 상하 관계가 아니다. 이 구분이 흐려지면, 이미 정확한 답을 준 곳에서 다른 답을 다시 구하려는 시도가 반복된다. 선별급여 품목 하나를 두고도 이 구분은 그대로 적용된다. 임상 재평가 결과에 따른 급여 유지 여부는 심평원의 몫이고, 임상 실패 시 청구된 환자 부담금을 환급하는 계약 조건은 공단의 몫이다. 같은 품목을 다루는 사안이라도, 문의할 곳은 완전히 갈린다. 업무의 성격이 레이어를 정한다 결국 어느 레이어에 속하는 문제인지는, 그 업무가 요구하는 변화의 성격이 정한다. 요청하는 것이 "기준 자체를 바꿔달라"는 것인지, "기준을 어떻게 적용할지 해석해달라"는 것인지에 따라 출발선이 달라진다. 혁신형제약기업 인증의 R&D 투자 비율 같은 숫자 자체를 조정하는 일은 시행령 개정이 필요한 레이어 1의 사안이다. 제네릭 산정 비율이나 가산율처럼 약가를 계산하는 공식 자체를 바꾸는 일은 고시 개정이 필요한 레이어 2의 사안이다. 이미 정해진 산정 기준이나 급여 기준을 우리 제품·사안에 어떻게 적용할지를 확인하는 일은 심평원·공단의 해석이 이루어지는 레이어 3의 사안이다. 같은 복지부 소관 업무라도 변화의 성격에 따라 확인해야 할 규정과 절차, 예상해야 할 시간은 달라진다. 움직이기 전에 스스로에게 물을 것 새로운 이슈가 생겼을 때,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전에 이 세 가지만 먼저 짚어보면 출발선이 훨씬 정확해진다. 첫째, 우리가 요청하는 것은 기준 자체를 바꿔달라는 것인가, 아니면 기준을 어떻게 적용할지 해석해달라는 것인가. 둘째, 그 요청에 답할 권한을 실제로 가진 곳은 어디인가. 셋째, 그 레이어가 원래 요구하는 시간은 얼마나 되는가. 결국 남는 것은 하나다 이 업무가 요구하는 변화가 어느 레이어의 몫인지를 아는 것. 이 판단은 한 번에 완성되지 않는다. 같은 사안도 시점과 맥락에 따라 다르게 읽혀서, 그 정확도는 이 일을 오래 지켜본 시간 속에서 조금씩 쌓인다. 그리고 이 판단은 실무자 혼자만의 몫으로 끝나지 않는다. 레이어를 정확히 짚어 전달하면 회사 안의 논의와 정부와의 대화가 같은 지점에서 출발할 수 있다. 반대로 흐릿하게 전달되면, 기대하는 책임과 시간이 서로 어긋나고, 그 어긋남은 결국 회사도 정부도 함께 지치게 만든다. 레이어를 짚는 일은 어디에 있는 문인지를 아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 문을 통과하는 데 얼마만큼의 시간이 필요한지를 아는 일이기도 하다. 아무리 급한 사안이라도 그 문이 원래 요구하는 시간 자체가 줄어들지는 않는다. 앞서 세 장면에서 헤맸던 시간도 결국 정확한 문을 찾아가는 시간이었다. 그 문을 찾고 나서야, 당장 풀 문제인지 시간을 두고 풀어갈 문제인지도 비로소 판단할 수 있다.2026-08-13 06:00:40박준섭 이사 -
다품목 등재관리는 왜 14번째에 적용될까?올해 8월, 고시에 낯선 문구 하나가 등장한다. '다품목 등재관리.' 이름은 낯설지만 파장은 만만치 않다. 이미 잘 팔리고 있는 제네릭 성분이라도, 이 조항 하나로 상한금액이 갈릴 수 있다. 처음 듣는 이름 앞에서 막막함을 느꼈다면, 그건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이런 이름의 제도가 지금까지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조항을 하나씩 뜯어보면, 사실 완전히 새로운 개념은 아니다.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가산 제도를 뒤집어보면, 그 안에 답이 있다.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순서대로 풀어본다. 왜 이 제도가 생겼나 — 14라는 숫자의 배경 이번 개편 이후 현장에서 가장 자주 나오는 질문이다. 고시 본문은 '신청제품과 이미 등재된 동일제제와의 합이 14개 이상이 되는 경우'라고만 적고 있을 뿐, 왜 하필 14인지는 설명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 숫자를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면 근거가 보인다. 약사법 허가 구조를 역산하면 나오는 숫자 현행 약사법상 생동시험 제도에는 중요한 구조가 있다. 생동시험을 직접 주관한 회사는 최대 3개사에게 자료를 허여(공유)할 수 있다. 즉 주관 1개사 + 허여 3개사 = 4개사가 1개 생동 그룹을 이루고, 이 4개사는 사실상 동일한 제조 기반을 공유한다. 이것이 "국내 독립 제조소 3개가 안정적으로 확보된 상태"의 시장 구조다. 13개까지는 공급 기반이 완성된 시장, 14번째부터는 그 구조 밖으로 나가는 품목이 된다. 공단은 이미 '제조소 3개'를 공급 안정의 기준으로 쓰고 있었다 이 해석을 뒷받침하는 정책 선례가 있다. 건강보험공단이 2023년 상한금액 재평가 협상 시 업계에 통지한 이행관리 합의서 유형 분류 기준으로, 분류 기준은 ①동일제제 수 ②제조소 수 ③급여 청구량이었다. 낯설어 보였던 14가, 사실은 이미 존재하던 정책 판단의 연장선 위에 있었던 셈이다. 13개까지는 시장의 자율에 맡기고, 그 이상은 재정 관리 차원에서 조정하겠다는 설계로 읽을 수 있다. 14의 근거는 이제 알았다. 그런데 이 제도, 막상 실무에서 마주치면 왜 이렇게 낯설게 느껴지는 걸까. 답은 이미 알고 있는 제도를 뒤집어보는 데 있다. 발상의 전환 — 가산을 뒤집어본다 왜 유독 낯설게 느껴질까 가산은 익숙하다. 혁신형 제약기업 등 요건을 충족하면 산정된 약가보다 더 높은 가격을 1년간 받고, 여기에 국내생산 요건까지 충족하면 3년이 더해져 최대 4년까지 유지된다. 실무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계산해봤을 구조다. 다품목 등재관리는 반대다. 산정된 약가를 기준으로 삼는 건 똑같은데, 조건을 충족하면 일정 기간이 지난 뒤 가격이 15% 떨어진다. 방향이 반대일 뿐 뼈대는 같다. 그런데 이 제도엔 비교할 만한 익숙한 이름이 없었다. 그래서 실제보다 훨씬 복잡하고 생소하게 느껴진 것이다. 가산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다. "조건을 충족하면, 산정된 약가보다 높은 가격을 일정 기간 유지한다." 이걸 정가산이라고 불러보자. 이제 이 문장의 방향만 뒤집어본다. "조건을 충족하면, 산정된 약가보다 낮은 가격으로 일정 기간 후 조정된다." 이게 다품목 등재관리다. 이 글에서는 편의상 이걸 역가산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정가산(Premium Price) ↔ 역가산(Reverse Premium Price) INSIGHT "정가산"과 "역가산"은 규정에 나오는 공식 용어가 아니다. 다품목 등재관리를 가산의 반대 개념으로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이 글에서 붙인 이름이다. 참고로 "다품목 등재관리"라는 이름 자체도 조문에 직접 쓰여 있는 표현은 아니다 — 별표1 제2호가목(4)는 요건과 효과만 규정할 뿐 별도의 이름을 붙이지 않으며, "다품목 등재관리"는 보건복지부 정책 설명자료 등에서 이 조항을 가리킬 때 관용적으로 쓰는 표현이다. 두 제도를 나란히 놓으면 뼈대가 거의 똑같다는 게 보인다. 실무자가 부딪히는 지점 — 예측하기 어려운 이유 정가산·역가산이라는 틀을 손에 쥐고 나면, 왜 유독 이 제도가 예측하기 어렵게 느껴지는지도 설명이 된다. 이 제도를 처음 접했을 때 실무자가 느끼는 어려움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예측의 어려움이다. 다품목 등재관리는 내 제품 하나의 신청 순서가 아니라, 같은 달에 동일제제군 전체가 몇 개나 함께 신청되는지를 본다. 특허가 만료되는 대형 품목일수록 여러 회사가 비슷한 시기에 준비를 마치고 동시에 신청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내가 아무리 꼼꼼히 준비해도 그 결과는 다른 회사들의 움직임과 함께 결정된다. 둘째는 관리의 어려움이다. 다품목 등재관리는 신청 시점에 대상 여부가 한 번 확정되면, 그 이후엔 별도의 사건이나 재심사 없이 정해진 시점에 자동으로 가격이 조정된다. 등재 순간의 판단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그 이후로도 우리 제품이 언제 최종 약가에 도달하는지를 계속 추적해야 하는 부담이 남는다는 뜻이다. 게다가 이 추적은 우리 제품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같은 동일제제군에 있는 타사 제품이 언제까지 가산을 받는지, 그 가산이 국내생산 요건까지 포함하는지를 모르면, 어느 날 갑자기 경쟁 제품의 약가가 바뀌어도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우리 제품의 가산·역가산 일정만큼이나, 시장 전체의 등재 현황을 함께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다. 정책 취지 자체는 이해가 가능하다. 동일 성분 제네릭이 지나치게 많이 등재되는 구조를 정리하고 싶다는 문제의식에서, 이번 제도가 나온 것으로 보인다. 다만 그 적용 방식이 개별 기업 입장에서는 다소 낯설고 예측하기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만큼, 제도의 작동 방식을 정확히 이해하고 미리 대비해두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래서, 언제 얼마나 깎이는가 — 실무 판단 기준 판단 기준은 하나의 공식으로 요약된다. 이 합이 신청 시점에 14 이상이면, 그 동시신청 품목수(N)가 다품목 등재관리 대상이 된다. 이미 등재를 마친 X는 이후 다른 회사가 별도로 신청해 군 전체가 14개를 넘기더라도 영향받지 않는다. 확인해야 할 것은 "가산기간 중 몰래 14개를 넘지 않았는지"가 아니라, "우리가 신청하는 바로 그 순간 X+N이 몇 개인지"다. 이걸 X값별로 풀어보면 더 직관적이다. 이미 등재된 제품이 많은 성분일수록, 이번에 함께 신청할 수 있는 여유는 그만큼 줄어든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 판정은 딱 한 번, 신청하는 그 순간에만 이뤄진다. 언제 적용되는가 — 판정과 실제 인하는 시점이 다르다 대상이 되더라도 곧바로 가격이 내려가는 것은 아니다. 판정은 신청 시점에 끝나지만, 실제 가격 조정 시점은 신청제품이 가산을 받는지 여부, 그리고 언제 들어오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기준이 되는 Day 0은 가산의 기산일이다 — 통상 해당 동일제제군이 최초로 등재된 날을 가리킨다(자료제출의약품 등은 별도기준에 따라 판단이 필요하다). 자세한 근거 조문은 별표1 제2호가목(4)다. 원문을 그대로 보면 이렇다. 이 조문을 도식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Case A와 Case B는 결국 같은 결과다 — "언제부터"의 차이일 뿐, 둘 다 산정된 약가 대비 −15%로 수렴한다. Case C와 Case D는 여기에 가산이 얹혀 있다는 점이 다르다 — 가산이 끝나는 그 순간이 곧 −15%가 시작되는 순간이라는 것이다. 네 케이스 모두 인하 폭 자체는 같다. 생동성시험을 완료한 품목은 45%에서 38.25%로, 완료하지 못한 품목은 36%에서 30.6%로 조정된다. 규정에도 새겨진 대칭 — 가산 적용 품목의 다품목등재관리 적용 시점 그런데 이 대칭은 필자의 해석이 아니다. 규정을 직접 확인해보면, 조문 자체가 애초에 대칭되도록 짜여 있다. 앞서 본 조문에서 [Case C·D]로 표시했던 그 문장 — "가산 종료일의 다음 날부터"라는 부분이 바로 그 지점이다. 가산을 받고 있던 제품이라면, 정가산이 끝나는 바로 다음 날부터 역가산이 시작된다. 별도의 유예기간도, 새로운 판단 시점도 없다. 정가산의 종료일이 곧 역가산의 개시일이라는 뜻이다. 예를 들어 신규 제네릭 중 국내생산 요건을 충족해 등재시점(6개월)으로부터 3년(36개월)의 가산을 받는 품목이 있다고 해보자. 앞선 그림의 Case D에 해당하는 경우다. 이 제품은 6개월째, 다른 신규 제네릭들과 함께 신청되는 그 순간 이미 동일제제군 합계가 14개를 넘겼다 — 역가산 대상이라는 사실 자체는 이때 이미 확정된다. 다만 국내생산 요건으로 3년의 가산도 함께 받기 때문에, 실제 −15%가 적용되는 시점만 뒤로 미뤄질 뿐이다. 42개월째 정가산이 끝나면, 별도의 신청이나 재심사 없이 곧바로 다음 날부터 역가산 구간으로 넘어간다. TIP 신청 전 확인해야 할 두 가지 — 우리 제품이 정가산(가산) 대상인가, 그리고 우리 제품이 속한 동일제제군이 역가산(다품목 등재관리) 대상이 될 수 있는가. 이 둘은 서로 배타적이지 않다. 둘 다 해당한다면, 우리 제품의 가산 종료일을 아는 것이 곧 역가산 개시일을 아는 것과 같다. 별도로 다시 계산하거나 재심사받을 필요 없이, 정가산이 끝나는 그 날짜에 15% 인하가 이미 예정되어 있는 셈이다. 새로운 제도이기에, 더 꼼꼼히 다품목 등재관리는 2026년 8월부터 새롭게 시행되는 제도다. 아직 선례가 쌓여있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실제 적용 과정에서 세부 해석이 다듬어질 여지도 있고, 케이스별로 경계가 애매한 상황도 나올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이 시점에서는, 제도의 구조를 정확히 이해하고 우리 제품이 어디에 해당하는지를 미리 점검해두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등재 신청 전에는 X+N을 확인하고, 가산을 받는 품목이라면 그 종료일이 곧 역가산 개시일이 될 수 있다는 점을 함께 챙겨야 한다. 잘못된 해석으로 예상치 못한 불이익을 받는 일이 없도록, 등재 전후로 이 흐름을 계속 추적하는 습관을 들여두면 좋겠다. 가산은 산정가에서 위로 갈라지는 길이고, 다품목 등재관리는 같은 산정가에서 아래로 갈라지는 길이다. 이름이 낯설어도, 구조는 이미 우리가 알고 있던 것이다.2026-07-31 06:00:50박준섭 이사 -
제네릭과 신약 사이, 약가인하로 본 가중평균가의 역설경쟁하면 가격이 내려간다. 경제학의 기본 명제이고, 한국 약가 제도도 이 명제 위에 설계돼 있다. 제네릭 진입을 허용하고 시장에서 경쟁하게 두면, 약가는 자연스럽게 합리적인 수준으로 내려갈 것이라는 논리다. 그런데 이 논리를 끝까지 따라가다 보면, 처음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풍경이 보이기 시작한다. 역설의 장치, 가중평균가 그 중심에 가중평균가라는 장치가 있다. 동일 제품군 내에서 각 제품이 얼마나 팔리는 지를 반영해서, 많이 팔린 약의 가격이 전체 평균을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는 구조다. 저가 제품이 많이 팔릴수록, 그 치료군 전체의 가중평균가는 내려간다. 여기까지는 합리적이다. 시장의 실제 모습을 정직하게 반영하는 숫자니까. 그런데 이 숫자가 같은 치료군에서 뒤따라 나오는 신약의 급여 등재 기준선으로 쓰이는 순간,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 연결은 모든 신약에 똑같이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기존 치료제 대비 임상적으로 우월하다고 인정받는 혁신 신약이라면, 경제성평가를 거쳐 그 가치에 맞는 약가를 받는 경로를 탄다. 가중평균가의 영향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길이다. 문제는 그 다음 줄에 있는 신약들이다. 바로 대체제가 있는 비열등 입증신약으로, 국내에서 개발되는 신약 중 적지 않은 신약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글로벌 수준의 임상을 끌고 갈 수 있는 회사가 많지 않은 현실에서, 이 경로의 가격 천장은 이미 대체약제 시장이 정해놓은 셈이다. 가중평균가는 모든 신약의 가격을 좌우하는 통계장치라기보다, 이런 국내 개발 신약들이 지나가는 등재 경로의 출발선을 정하는 장치에 가깝다. 시장이 효율화될수록, 혁신의 보상 천장은 오히려 낮아진다. 즉, 오늘의 저가 경쟁이 내일의 신약 가격 기준선을 만든다. 정부 입장에서는 재정 절감이지만, 신약을 준비하는 제약사 입장에서는 미래 수익의 잠식이다. 구조가 유도하는 선택 이 구조를 끝까지 따라간 제약사라면 한 가지 질문에 도달하게 된다. 이 안에서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가. 이 구조 안에서 기업들이 택하게 되는 방향은 의외로 단순해 보인다. 생동 시험을 통과한 제품이 최고가로 진입하려는 유인이 강해진다. 고가 제네릭이 많을수록 가중평균가는 높게 유지되기 때문이다. 이는 기업의 도덕성 문제가 아니라, 현재 제도가 만들어내는 합리적 유인 구조다. 반대로 허가자료를 허여하는 순간 가중평균가는 회사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으로 넘어간다. 자료를 제공받은 회사는 요건 미충족으로 20% 인하된 가격에 시장에 들어오고, 그 저가 제품이 가중평균가를 끌어내린다. INSIGHT 가중평균가를 지키는 일은 개별 회사의 이해관계를 넘어, 국내 제약산업이 미래에도 신약을 개발할 수 있는 기반을 유지하는 문제다. 어획량을 유지하려면 어린 물고기를 놓아주는 질서가 필요하듯, 당장의 가격 경쟁에서 눈앞의 이익만 좇다 보면 산업 전체가 유지해온 가치가 서서히 사라진다. 당장은 보이지 않지만, 가중평균가가 무너지는 속도는 한번 시작되면 되돌리기 어렵다. 다만 이 부담을 느끼는 정도는 회사마다 다르다. 현재 개발 중인 신약 파이프라인을 가진 회사는 가중평균가가 곧 다음 제품의 가격이라 이를 적극적으로 지키려 하지만, 신약 파이프라인이 없는 제네릭 전업 회사에게는 당장 자기 일처럼 느껴지지 않을 수 있다. 그래도 지켜야 하는 이유 그럼에도 이 계산에서 자유로운 회사는 없다. 신약 파이프라인을 이미 보유한 회사라면, 오늘의 저가 제네릭 매출 몇 억을 지키려다 내일의 신약 시장 수십억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자기잠식에 빠질 수 있다. 파이프라인이 아직 없는 회사도 예외는 아니다. 오늘의 제네릭 전업사가 내일의 개량신약이나 국내 신약을 준비하는 회사가 되지 못할 이유는 없고, 그 치료군에서 신약이 계속 나오지 못하면 시장 자체가 매력을 잃기 때문이다. 결국 문제는 경쟁 자체가 아니라, 그 경쟁이 만들어내는 균형이다. 제도의 몫도 있다 이 문제를 제약사의 절제만으로 풀 수 있다고 보는 것도 정확하지 않다. 약가 담당자들을 가장 답답하게 만드는 지점은 따로 있다. 비열등 입증 신약의 가치가, 국내 개발이든 외자사 제품이든 관계없이, 임상적 근거나 치료적 필요성과 무관하게 가중평균가라는 기계적 통계장치 하나에 전적으로 묶여 있다는 사실이다. 다만 이 경로에 상대적으로 더 많이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국내 개발사 입장에서는 그 영향이 더 직접적으로 다가온다. 동일 성분 제네릭 시장의 가격 흐름과 무관하게, 국내 개발 신약이 실제로 제공하는 임상적 유용성이나 치료 순응도 개선 같은 가치가 별도로 평가받는 경로가 마련되어 있다면, 제약사 입장에서도 가중평균가 방어에만 매달릴 이유는 자연히 줄어들 것이다. 그런 통로 없이 이 부담을 제약사의 자발적 절제에만 기대는 구조라면, 그 절제는 매출 목표 앞에서 오래 버티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WARNING 시장에서 큰 역할도 없이 가중평균가 계산에만 영향을 주는 제품들이 계속 쌓이면, 그 부담은 다음에 나올 신약의 가격으로 돌아간다. 실제 사례에서도 가중평균가 기반으로 등재되는 신약은 동일 계열 최초 등재 신약보다 낮은 가격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가중평균가 자체도 매해 우하향해온 것이 현실이며, 저가 제네릭 유입이 계속되는 구조라면 앞으로 그 하락 폭은 더 커질 수 있다. 다음 신약의 출발선을 지키는 일 이 글이 모든 입장을 만족시킬 수 없다는 것은 알고 있다. 당장의 매출과 생존이 걸린 회사에게 절제를 이야기하는 것은 쉬운 요구가 아니고, 이 구조 안에서 최고가로 진입하고 자료를 허여하지 않는 선택은 개별 회사 입장에서는 여전히 합리적이다. 다만 눈앞의 숫자에 쫓기다 보면 이 계산이 후속 파이프라인의 가치까지 깎아먹는다는 큰 그림을 놓치기 쉽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럴수록 주기적으로 다시 꺼내, 늘 같은 기준으로 되짚어봐야 한다. 정리하면,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는 이렇게 좁혀진다. CONCLUSION 자체 개발 제네릭 자체가 무의미한 건 아니다. 생동 시험을 직접 수행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 연구개발 역량이고, 그 경험은 이후 개량신약과 신약 개발의 기초 체력이 된다. 정부도 이 가치를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어서, 생동을 거치지 않은 품목은 상대적으로 낮은 약가를 받는다. 문제는 그 역량이 이미 경쟁이 과열된 영역으로 쏠릴 때 생긴다. 결국 남는 것은 두 가지다. 동일 성분에 필요 이상의 제품이 몰리지 않도록 스스로 계산하는 일, 그리고 우리가 개발할 신약이 기존 치료제보다 나은 점을 근거 자료로 명확히 증명하고 그 가치가 약가에 반영되도록 정부와 제도 개선을 협의하는 일. 이 계산을 업계의 자발적 절제에만 맡겨두는 한, 다음 국산신약의 출발선은 계속 낮아질 것이다. 서로 다른 진영의 몫처럼 보이지만, 결국 국내 제약산업의 미래라는 같은 목표를 향한 서로 다른 접근에 가깝다. 오늘의 약가 인하는 오늘로 끝나지 않는다. 그 숫자는 결국, 아직 나오지 않은 다음 신약의 출발선에 먼저 도착해 있다.2026-07-16 06:00:44박준섭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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